GSOMIA 종료는 ‘준비된 조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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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GSOMIA 종료는 ‘준비된 조치’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8. 23.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한·일이 충돌하면서 생긴 불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태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GSOMIA 연장 시한을 이틀 앞두고 이 협정 종료를 결정했다. 결정 배경은 한·일 갈등과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이지만 GSOMIA 종료 결정은 한·일 갈등과는 또 다른 차원의, 그리고 한·일 갈등 못지않은 중대한 파장을 낳을 새로운 문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GSOMIA는 사실 한·일 간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협정이 아니다. 한국은 30여개국과 GSOMIA를 체결하고 있다. GSOMIA는 국가 간에 오가는 군사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정보를 공유하도록 의무화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를 주고받을 때 GSOMIA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안원칙·제공경로·관리방법·보호의무 등을 따르라는 것이다. 음식을 담아 나르는 그릇이나 자동차가 빠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고속도로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NHK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도쿄 _ 연합뉴스


일본과의 GSOMIA가 국민정서에 안 맞는 것도 사실이다. GSOMIA가 체결되기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갖은 우여곡절이 이를 상징한다. GSOMIA로 인해 일본이 더 큰 정보상의 이득을 본다는 주장도 있고 GSOMIA가 한·미·일을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로 묶기 위한 기제이므로 한국이 아닌 미·일의 안보를 위한 거라는 주장도 있다. 2016년 GSOMIA 체결 이후 지금까지 파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종료 배경에 대해 일본이 ‘안보상의 신뢰’를 문제 삼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서 민감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협정을 일본과 지속하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또 GSOMIA가 없어도 한·미 연합자산과 다른 한·미·일 정보공유 기제를 통해 일본과 협력이 진행될 수 있기에 정보·감시 공백은 없다고 했다. 일본을 제외한 주변국과 공조가 훌륭하고 남북군사합의로 군사적 긴장도가 낮아진 점, 북·미가 대화 국면에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안보상황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이 말대로 되려면 앞으로 한·미 공조가 더욱 공고해져야 하고 남북군사합의는 계속 효력을 발휘하며 작동해야 한다. 또한 북·미는 계속 대화를 이어가면서 비핵화 협상에서 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올스톱 상태다. 북·미는 대화를 재개키로 합의했지만 이른 시간 안에 성공적인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GSOMIA 종료로 한·미 공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GSOMIA에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이 깊이 얽혀 있다. 어떤 의미에서 GSOMIA는 일본보다 미국에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졸속적으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 데 이어 이듬해 콩 구워 먹듯 일본과 GSOMIA를 체결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모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박근혜 정부를 압박해 순차적으로 이뤄놓은 것들이다. GSOMIA가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GSOMIA를 한국이 종료시키면 미국도 큰 피해를 입는다. 미국의 국익에 손상이 가는데 한·미관계에 영향이 없을 리 없다. 물론 한국이 GSOMIA를 깨겠다면 미국은 한국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은 한국이 진다. GSOMIA 종료가 미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내린 결정이며 미국도 한국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미 공조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이 맞는지 여부는 앞으로 벌어지는 일을 봐야 알 수 있다. 


청와대가 처음 GSOMIA 카드를 들고나왔을 때 미국이 한·일 갈등 중재에 나서도록 압박해보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GSOMIA를 종료시켜 미국을 움직이기 위한 카드가 아님을 입증했다. 어쨌든 이제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GSOMIA 중단으로 빚어질 파장이 매우 심대할 것임은 자명하다. 청와대는 정치·안보·국민정서 등 모든 것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말대로 이번 GSOMIA 중단 결정은 모든 것에 대비하고 검토한 ‘철저하게 준비된 조치’여야 한다. 준비없이 시작했다 갈 데까지 가게 돼서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아베마리아를 외치며 시도하는 ‘헤일매리 패스’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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