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저항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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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저항의 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1. 24.

비폭력 저항은 자칭 ‘정치적 현실주의자’라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그것은 약자의 전술이고, ‘약자’는 폭력으로 맞서 이길 가망이 없는 사람들을 뜻하기 때문이다. 폭력을 써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가야 할 길이지만, 질 것이 확실하다면 비폭력이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비폭력은 차선책이다.

이러한 논법은 특히 식민지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나 압제적 정부에 직면한 사람들의 경우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복종하는 사고방식을 갖도록 훈련되어 어떤 경우에는 지배세력에 반론을 펴거나 불복종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된다. 프란츠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정신상태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파농은 식민지적 맥락에서 폭력이 식민지배자들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피지배자들을 복종하는 사고방식에서 해방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봤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폭력은 정화(淨化)하는 힘을 갖는다. 그것은 열등감, 절망, 나태로부터 본성을 해방시킨다. 또 두려움을 없애주고 자긍심을 회복시킨다”고 썼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폭력 자체가 이런 효과를 갖는 것인가, 아니면 폭력이 식민지 권력 시스템을 거부하는 표현의 하나인가? 물론 피지배자가 성공적으로 지배자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경우, 지배자가 평소 보여온 모습과 달리 전능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총이나 폭탄으로 지배자를 죽이는 것은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환경주의자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총이나 폭탄의 사용은 일종의 기술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있다. 화약이 어떠한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피지배자가 좀 더 깊은 차원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지배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지배자의 위치를 부정하는 정신적 힘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자를 죽이면 그는 더 이상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이로써 그때까지 지배받았던 사람의 삶은 더 쉬워지겠지만 그 사람이 (다른) 지배자의 명령을 거부할 힘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그런 힘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지배자를 마주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은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다. 반면 비폭력·시민불복종은 문제를 직접 다룬다. 그런 사람은 폭압적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에 불복종함으로써 그 명령을 거부하는 능력을 키우고, 보여준다. 지배자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어렵다. 정신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다. 하지만 살아 있는 지배자에게 맞서 복종을 거부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다. 간디가 사티야그라하(비폭력·불복종)는 힘없는 자의 무기라는 관념을 부정하고 오히려 불복종이 어떠한 군인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신적 힘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군기지 철수를 요구하는 오키나와 헤노코 농성장 (출처 : 경향DB)


내가 사는 오키나와는 법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론 식민지다. 시장, 저임 노동력, 자연자원 등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이 이 식민지에서 얻는 것은 미미하다.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를 두는 장소로 유용하다. 오키나와인들은 오랫동안 이 기지들을 반대해왔지만, 최근 들어 그들은 요구·탄원·호소하던 태도에서 거부하는 태도로 전환했다. 그들은 달성가능한 목표에 집중했다. ‘어디에도 기지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헤노코에 새 미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고 하는 것은 곧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과 오키나와 사이의 주종관계의 핵심을 파고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것은 주목할 만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장의 시위대는 건설작업을 직접 방해하고 있고,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경찰은 프로다운 침착함을 잃기 시작했고, 건설작업팀은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작업 마감일은 연기됐다. 그들은 “태풍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풍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번 것은 다른 종류의 태풍이다. 사람들로 이뤄진 태풍 말이다. 몇 주일 안에 그 태풍이 얼마나 빠른 바람을 만들어내는지 보게 될 것이다.


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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