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북·미 정상회담을 흔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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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누가 북·미 정상회담을 흔들고 있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5. 17.

북한이 16일 한국과 미국에 강도 높은 경고 조치를 취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 공군의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이날로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통해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압박했다.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담판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낙관적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의한 지 하루도 안돼 일방적으로 회담을 연기한 북한의 행태는 대단히 유감스럽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판을 깨지는 않겠지만 한·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맥스선더’ 훈련을 거론했지만 전적으로 이것 때문에 회담을 연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훈련은 ‘4·27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이미 공표됐고, 지난 11일부터 시작해 한창 훈련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훈련이 장애물이라고 인식했다면 사전에 문제 삼거나, 훈련 중 회담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여러 차례 한국과 미국이 연합훈련을 계속할 필요성과 유용성에 대해 이해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그렇다고 ‘맥스선더’ 훈련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미는 전과 달리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첨단 F-22 랩터 전투기 8대를 동원했고,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표했다. 북한은 이번 훈련에 대해 통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판문점선언을 통해 군사적 긴장완화를 약속해놓고 군사훈련을 강화한 것에 대한 실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과 선의에 남조선과 미국이 무례무도한 도발로 대답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이해된다. 한국과 미국은 이 같은 북한의 우려를 경시하면 안된다.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핵이라는 유일한 자산을 내세워 정권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는 북한의 입장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비록 한·미 양국에 동시에 경고를 날렸지만 실질적인 겨냥점은 미국에 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김 부상의 성명에 잘 나타난다. 그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 고위관리들이 ‘선 핵포기, 후 보상’이나 ‘리비아식 핵포기 방식’,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등을 밝히고 있다면서 “이는 상대방을 심히 자극하는 망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라고 규정했다.

 

북한 입장에서 볼턴의 발언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의 반발로 후퇴했던 비핵화 요건을 다시 강화한 것은 물론 북핵 반출 및 미국 이송을 강요하고 북한 인권 개선까지 주장하는 등 잇단 강경 발언으로 북한을 압박해왔다. 북한으로서는 비핵화가 완료된 후에야 국제사회와의 경제 교류가 가능하며, 그것도 미국의 지원 형태가 아니라 정상적인 교역을 통해야 할 것이라고 못 박은 대목에서는 모멸감까지 느꼈을 법하다.

 

볼턴의 발언이 조율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기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 사전조율 과정상의 기싸움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볼턴의 언행만으로는 회담을 하자는 것인지, 북한 정권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북 체제안전 보장이 핵심의제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북·미 현안을 앞세우면 북·미 정상회담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 평화의 소중한 기회이다. 누구든 회담을 흔든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설령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히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직접 회담에 관여하는 남·북·미 당국자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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