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트럼프의 ‘이기기 쉽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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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시론]트럼프의 ‘이기기 쉽지 않은’ 전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4. 9.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며 이기기 쉽다”고 한 공언과 달리 미국은 중국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는 논리로 방어에 주력했던 중국은 적극적인 공격을 통해 확전을 불사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2일 1300개 중국산 제품에 총 500억달러(약 54조원) 상당의 관세 부과 방안을 발표하자, 중국은 그다음 날 106개 미국산 제품에 총 500억달러 상당의 보복 관세로 응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우리는 미국을 대표했던 어리석고 무능한 사람들이 오래전에 패배한 무역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주장을 통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지만, 중국은 현재까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까지 중국을 쉽게 이기지 못했을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의 불공정 행위에 불만을 가지는 국가들조차 미국에 대한 지지를 꺼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동맹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까지 불공정 무역 국가로 규정하고 ‘최대한 압박’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가 미국의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는 자충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웨스트버지니아주 화이트설퍼스프링스에서 열린 세제 개편 토론회에서 준비해온 원고를 던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지난 3월 모든 수출국에 대한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 조치였다. 이 조치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국가가 중국(미국 수출 순위 11위)이 아니라 캐나다(1위), 한국(3위), 멕시코(4위), 일본(6위)이었기 때문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와중에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11개 회원국을 모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성사시키는 데 캐나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멕시코 역시 NAFTA 재협상을 국경장벽 건설과 연계하는 것은 물론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함께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는 일본도 한국·호주와 달리 관세 부과 조치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 한·미 FTA 개정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위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극찬한 지 단 하루 만에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그것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단서조건을 단 바 있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압박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국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취임 이후 한 번도 5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관세 보복 조치는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 미국 수출품 중에서 대중 의존도가 높은 상품은 대두, 수수, 돼지고기, 항공기 등이다. 미국 대중 수출품 중 약 10%를 차지하는 대두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대두와 돼지 생산량 상위 10개 주 가운데 8곳에서, 수수 최다 생산 10개 주 가운데 7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바 있다. 지난 3일 대두가 중국의 보복 관세 방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미국대두협회(ASA)가 무역전쟁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선거 일자가 다가올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의 요구를 무시하기 더 어렵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을 자주 번복함으로써 국제적 신뢰를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하자마자 미국이 TPP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올해 1월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더 나은 협상을 할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미국이 TPP에 다시 가입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였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급증했다고 지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WTO 탈퇴까지 시사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달 23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를 WTO에 제소한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승패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달려 있다. 미국이 막후 협상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중국의 양보가 체면을 세워줄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질서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왕휘 |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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