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인의 에르빌 통신]겨울 맞는 난민촌 추위보다 힘든 건 사라져버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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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신혜인의 에르빌 통신]겨울 맞는 난민촌 추위보다 힘든 건 사라져버린 ‘희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1. 4.

30도를 오르내리던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기온이 11월에 들어서면서 뚝 떨어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겨울 구호품 배급이 시작됐다. 텐트에서 몇 주, 몇 달을 지내야 하는 난민들과 캠프를 건설 중인 구호기구들에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모술 동쪽, 유엔난민기구 젤리칸 캠프에서 라흐마(46)를 만났다. 전날 함다니야에서 피란 온 1500명의 난민 중 한 명이다. 검문 과정에서 가족들이 이별할까 걱정해 피신을 포기한 이웃, 남겨두고 온 집과 가축에 대해 담담히 설명하던 그는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산샴 캠프에서 지내는 파르아(39)는 태어난 지 두 달 된 막내에게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 파르아는 알레르기로 생긴 물집이 터져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내보이며 쿠르드어로 “부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행했던 직원이 설명했다. “부디 전해달라고요. 먹을 것과 담요가 더 필요하다고.”

 

여든 살 노인 아흐마드는 혈압이 올라 큰일이다. 아들 알리(35)는 피란길에 아버지의 약을 미처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알리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작은 수레에 태워 몇 시간을 끌고 왔다. 일가족 18명과 함께 캠프에 도착한 아흐마드는 춥고 긴 겨울을 걱정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이슬람국가(IS)가 깔아놓은 지뢰에 목숨을 잃은 이웃들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수학교사인 알리는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온 가족이 텐트에서 겨울을 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알리에게 아버지는 “살 날이 더 많이 남은 네가 할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정부군이 2년 만에 모술에 진입, 시가전이 시작됐다. IS의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면서 난민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매일 수십~수백명이 늘어나던 캠프에 하룻밤 새 3000명이 들어왔다. 어느새 4개 캠프에 분산 수용된 난민 수가 2만명이 넘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갓난아기를 안고, 나이든 부모를 부축하며 길게는 열 시간을 걸어, 비바람에 펄럭이는 텐트들이 둘러쳐진 캠프에 도착한 난민들은 아마도 대개는 알리처럼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모술은 특히 고학력, 중산층의 시민이 많이 있던 곳이라, 귀환을 서두르려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난민기구는 우선 난민 7000명에게 귀환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모술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도착한 이들의 얼굴에는 작전이 시작되면 곧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작전이 시작된 후 피란 온 난민들에게서는 희망이 읽히지 않는다. 미군 현지 사령관도 “모술 탈환작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작전을 직접 본 이들의 걱정도 그것이다. IS가 5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인간 방패’ 삼아 폭격의 중심부로 내몰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해방을 위해 왔다던 정부군조차 주민들을 고문한다.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간 난민은 3300명 정도다. 모든 난민이 귀환해 ‘모술 긴급구호 계획’이 현재진행형이 아닌 기록으로만 남기를.

 

신혜인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공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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