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명분으로 분담금 더 주는 게 동맹 강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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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억지 명분으로 분담금 더 주는 게 동맹 강화인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21. 3. 12.

제11차 한·미 SMA(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 따라 올해 한국은 이전보다 13.9% 늘어난 1조1833억원을 분담금으로 내야 한다. 또 향후 5년의 협정 유효기간 동안 매년 국방비 증가율만큼 분담금을 더 내도록 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중기국방계획에 따라 해마다 평균 6.1%의 국방비를 올리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조건은 ‘한국은 매년 분담금을 6~7%씩 늘리기로 한다’는 문장을 협정문에 명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결과 협정 마지막 해인 2025년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요구했던 50% 증액이 이뤄지게 된다.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5년 뒤로 미뤄 들어주는 셈이다.

 

국방비 증가율을 연간 분담금 변화에 연동시킨 것은 명분도 근거도 없다. 따라서 전례도 없다. ‘국방비 연동’ 이유에 대해 정부는 “국방비 지출이 국력을 나타내는 합리적 지표”라는 해괴한 설명을 내놨다. 국력을 나타내는 지표는 여러 가지 있지만, 과문한 탓인지 국방비 지출이 그중 하나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가장 많은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라는 말인가.

 

지금까지 협정 기간 내 분담금 변화는 물가 상승률에 따라 조정해 왔다. 기본적으로 다년 협정은 유효기간 동안 ‘분담금 동결’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물가 상승률을 연동시킨 것은 경제 여건이 변해도 이미 정해진 분담금이 매년 동일한 가치를 갖도록 ‘보정’을 하기 위한 것이지 분담금을 올려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국방비 증가율을 연동시켜 매년 복리로 분담금을 올려줘야 한다면 다년 협정을 할 이유가 없다. 국방비를 분담금 증액 근거로 삼은 것이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국방비는 상당 부분 미국산 무기를 사는 데 쓰이기 때문에 국방비도 늘리고 방위비 분담금도 증액하는 것은 미국에는 ‘이중 수혜’가 된다. 그리고 이 정도 액수라면 한국은 이미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50% 이상을 부담하는 것이 확실해진다. 미국이 주둔비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내는 돈이 50%가 넘는지 숫자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미 국방부 관계자가 의회 청문회에서 “한국은 주둔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고 증언한 것이 이미 5년 전의 일이고 보면 굳이 장부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주한미군기지 한국인 근로자 처우 개선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이 분담금을 늘리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이 문제는 방위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사안이 아니라 한국인 근로자 노조가 할 일이다. 강제 무급휴직을 막는 장치를 신설한 것은 주한미군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한국이 거둔 성과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이번 협상이 성공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만큼 부질없다.

 

사실 방위비 액수는 한·미관계의 규모나 중요성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어서 방위비를 갖고 한·미가 얼굴을 붉히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것도 아니고 국력에 걸맞은 분담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칙과 국격은 지켜야 한다. 궤변 대신 차라리 ‘트럼프가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나려면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매듭짓고 바이든 행정부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고 솔직하게 설명했다면 이해를 구하기 쉬웠을 것이다.

 

트럼프의 요구를 ‘동맹에 대한 갈취’라고 비난했던 바이든도 이미 트럼프가 미국에 유리하게 짜놓은 틀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또 한국은 미국 정권교체를 계기로 판을 바꿔보려는 전략과 의지 없이 바이든 정부의 선의에 의존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가 이렇게 미국에 끌려다니는 것은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과거 노무현 정부 내부에서 “자주외교를 외치는 진보 인사들이 미국 앞에서는 더 고분고분하더라”는 말이 나오면서 조선시대 사화를 방불케 하는 ‘자주파·동맹파 사건’의 시발점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 일이 현행 분담금 체제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미 주한미군의 성격과 전략적 가치는 과거와 같지 않다. 특히 분담금은 인건비·건설비·군수지원비로 지출항목이 한정돼 있어 돈을 올려줘도 쓸 수가 없다. 금고에 돈이 쌓이고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미 동맹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면 억지 명분을 만들어 분담금을 계속 늘려줄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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