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동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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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여적]동인당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 11.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연행사들이 선물로 가져갔던 물건에는 종이, 먹, 부채, 우황청심환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우황청심환은 최고의 인기품이었다.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는 청심환을 먹고 어린아이의 경련이 씻은 듯이 나았다든지, 청심환 속에 신비의 물질 고빙(古氷·녹지 않은 얼음)이 있다는 등의 소문이 자자했다. 연행록에는 청심환을 얻으러 사행단을 졸졸 따라다니는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실려 있다. <열하일기>에는 청나라 유생 왕민호가 박지원에게 은 두 냥을 보내면서 청심환 한 알만 구해달라며 간절히 호소하는 내용이 나온다. 중국에도 청심환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조선의 우황청심환만 찾았다. 조선 청심환에도 가짜가 없었겠느냐마는 중국인들은 개의치 않았다. “북경 사람들은 청심환을 보배로 여겨 가짜임을 잘 알면서도 구하기를 마지않으니 이 역시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홍대용 <담헌연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 _ 신화연합뉴스


조선의 명약 우황청심환의 위상이 흔들린 것은 한말 개항 이후다. 의학체계가 한의학에서 서양의학으로 바뀌면서 한방약도 서양 의약품에 밀려났다. 반면 중국은 개항 이후 서양의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중의학과 중국 약방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살아남은 대표적인 의약방이 동인당(同仁堂)이다. 1669년 설립됐으니 350년 역사를 지닌 노포(老鋪)다. 동인당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우황청심환 때문이다. 개혁·개방 후 동인당 청심환은 한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중국의 보따리장수들이 몰래 서울로 들여와 팔아 돈을 챙겼다. 한때 중국 여행객에게는 필수 구매 상품이었다. 작가 박완서는 단편 ‘우황청심환’에서 이러한 세태를 담아냈다. 


지난 9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의 동인당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30분간 머물며 생산시설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북한이 생약 현대화·과학화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제약 공장과 의료기기 공장을 현대화하고, 의료 시설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통 의료가 북한만의 관심사일까. 남북 모두 동양 의약에 눈을 돌려 ‘조선 청심환’의 명예를 되찾기 바란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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