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기시다의 탈원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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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 기시다의 탈원전 포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8. 26.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가동 중단된 원전을 재가동하는 한편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의 오염수 탱크. 교도연합뉴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일본 정부와 원전업계가 어떤 경우에도 안전하다고 장담한 원자로는 지진해일로 인해 냉각장치에 공급되는 전력이 끊어지자 폭발했고, 엄청난 양의 방사능을 뿜어냈다. 일본은 원자로 57기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이 조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리 속에 ‘원전 르네상스’에 도취된 전 세계에 이른바 ‘현타’를 주면서 각국으로 하여금 재생에너지 개발에 나서게 했다. 독일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탈원전 선언이 이어졌다. 당장의 편의를 위해 원전에 의존함으로써 후손들에게 수만년 동안 위험한 핵폐기물을 떠안기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한국에서도 녹색당이 창당됐고, 대통령 후보들도 앞다퉈 탈원전을 외쳤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지난 2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가동 중단된 원전을 재가동하는 한편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일본에서 신규 원전 건설은 전임 총리 아베 신조조차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던 일이다. 수많은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귀환하지 못한 채 객지를 떠돌 만큼 사고 후유증이 큰 탓이다. 당시 사고조차 완전히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도 매일 사고 원전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오염수를 저장하고 있다. 더 이상 저장할 수 없어 주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년 6월부터 30~40년간 이를 방류할 예정이다. 

노후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과 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일본이 전력난을 겪고 있다. 원전 비중을 크게 줄인 상황이라 다른 나라보다 고충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11년 동안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데 안일했다는 것은 놀랍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기시다의 원전 재개 발언은 시민들의 요구라기보다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로비에 나선 결과라고 보도했다. “그만하면 시간도 충분히 지났고, 대중이 원전 위험보다 에너지 공급을 더 걱정하지 않겠느냐는 느낌도 작용했다”는 기시다 측 핵심 관계자의 말도 전했다. 향후 3년간 큰 선거가 없는 것에 안심한 것일까. 탈원전 흐름을 만들었던 일본 시민들의 양식을 믿고 싶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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