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리즈 트러스와 ‘대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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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 리즈 트러스와 ‘대처 신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22. 9. 7.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이 5일(현지시간) 보수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뒤 런던 웨스터민스터의 보수당 중앙당사를 나오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의 힘은 최대 식민지를 경영했던 1922년 정점을 찍은 뒤 쇠퇴의 길을 걸었다. 최근에는 국내총생산 규모 면에서 과거 식민지였던 인도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영국의 영광을 재건하겠다고 나선 보수 정치인이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1925~2013)였다. 1979~1990년 총리로 재임한 그는 ‘영국병’을 사회복지국가에서 찾으며 노동조합 파괴,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에 주력했다. 신자유주의로 명명된 이 교리를 이후 다른 많은 나라들이 채택했다.

그 결과 영국이 다시 위대해졌을까. 아니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고, 결과적으로 경제도 나아지지 않았다. 2020년 영국은 반세기를 함께한 유럽연합(EU)과 결별하는 ‘브렉시트’라는 극약처방을 썼지만 그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에너지 가격 80% 인상 등 고물가에 직면해 체감 생활수준은 어느 때보다 낮다. 그런 가운데 ‘제2의 철의 여인’을 꿈꾸는 정치인이 나타났다. 보리스 존슨 총리 후임자로 6일(현지시간) 취임할 리즈 트러스(47)다. 그는 대처, 테리사 메이에 이어 영국의 세 번째 여성 총리가 된다.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에너지기업 셸 등 대기업에 근무한 뒤 2012년 교육장관을 시작으로, 3명의 보수당 총리 밑에서 환경·법무·재무·국제통상·외교까지 6개 부처 장관을 지냈다.

트러스는 모양새만 대처를 따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처의 래디컬한 보수 이념을 더 극단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부유층 감세 정책, 노동시장 유연화가 대표적이다. 북아일랜드의 EU 탈퇴를 통해 브렉시트를 완성하고, 미국과도 각을 세우겠다고 한다. 

정치인에게는 ‘비전’이 필요하다. 트러스는 그 비전을 자신이 10대 시절을 보낸 대처 집권기에서 찾는다.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는 규제 개혁을 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했던 첫 나라들 중 하나였다. 1980년대에 우리는 위대한 것들을 해냈다”며 “하지만 그 후 많은 다른 나라들이 규제나 과세 시스템의 단순성 측면에서 우리를 앞질렀다”고 말했다. 물론 미래 비전을 과거로부터 찾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비전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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