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인터넷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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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 인터넷 승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9.

일본인들의 종교관을 말할 때 흔히 “태어날 때는 신사(神社)를 찾아가고, 결혼할 때는 교회나 성당을 찾고, 죽은 후에는 절로 간다”고 한다. 한 사람이 여러 종교에 간여하는 일이 드물지 않고, 종교 행사가 일상에 깊게 스며있는 일본의 독특한 종교 사정을 반영한 말이다. 신사를 현실의 소망을 축원하는 장소로 여기는 반면 절은 사후의 희망을 추구하는 곳으로 인식한다. 장례식을 불교식으로 치르기 때문에 웬만한 집은 다 동네에 있는 사찰의 스님과 인연을 맺어놓는다. 의사로 치면 집안 주치의가 있는 것처럼 집안에 일이 있을 때 전담하는 스님이 있는 셈이다.

이런 일본에서 스님들과 제휴를 맺어놓고 필요한 사람들로부터 인터넷으로 접수받아 스님을 보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도쿄의 한 장의회사가 이달부터 시작한 사업인데, 망자의 명복을 비는 행사인 법사(法事) 등에 독경하는 승려를 보내면서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고 있다. 인터넷 업체 아마존재팬을 통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일 뿐 이미 재작년부터 전화나 e메일로 신청을 접수받아왔다고 한다. 사업이 잘되어서 인터넷 서비스까지 개시되자 위기감을 느낀 불교계가 종교를 상품화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전일본불교회가 이례적으로 나서 “보시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대가가 아니다”라고 성명까지 냈다. 아마존에 서비스 중지를 요청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회사 측은 불교계의 반응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많은 승려들이 이 서비스에 가입하고 싶어한다”며 반박했다. 시대적인 흐름에 적응해 사찰과 사람 간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일본 고바야시스님_경향DB

이런 서비스가 나온 배경에는 도시화와 1인 가구가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꼭 필요할 때에만 스님을 찾게 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3만5000엔만 내면 언제 어디로든 스님을 보내주는 데다 신용카드로 간편하게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종교에도 일회성 서비스가 등장한 셈이다. 산속에 있던 절이 신도를 찾아 시내로 나오더니, 이젠 인터넷을 통한 종교생활이 시작됐다. 아직은 스님을 연결해주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인터넷 사찰이나 인터넷 신도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인터넷과 종교의 만남, 어디까지 갈까.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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