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안보 우울증,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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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안보 우울증, 부질없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2. 2.

우울증은 정신질환이다. ‘그저 우울한 기분’으로 정의할 수 없는 온전한 육체를 병들게 하는 마음의 병이다. 우울한 정서는 육체적 활동량을 저하하고 열등감과 비관적 태도를 유발하는 고약한 병이다. 긍정과 희망은 사라진다. 우울증 환자는 주변의 상황과 인물들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한다. 이를테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양분한다. 우울증은 주변 상황을 과도하게 단순화해 대부분의 기회를 실패할 것이라고 비관하게 한다. 결국, 자신의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상대를 과대평가하며 ‘나는 못났고, 상대는 잘났으며, 고로 나는 미약하다’라는 이분법적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마음의 상태가 우울증이다. 따라서 우울증은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단하고 심각한 무력감을 느끼게 하여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결론짓게 한다.

고백하건대, 이제 겨우 40대 초반인 나는 최근 “부질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결코 우울증 환자가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의 안보인식과 정서가 심각한 무력감과 이분법적 사고 그리고 주변 상황을 비관하고 그래서 타인을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우울증 그 증세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부질없다라는 말만 남는다.

한번 따져보자. 그 어느 하나 낙관과 긍정을 갖게 하는 사건과 상황이 없었던 한 해가 2014년이다. 북한의 핵능력과 미사일 개발, 한반도 비핵화의 도태, 6자회담 중지, 남북관계 퇴화, 군내 폭력 및 성추행 사건, 대북전단 살포, 방산 비리,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 미·일동맹 강화, 한·일관계 도태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2014년 수백명의 아이들이 차디찬 바다에 버려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사회는 마음앓이를 크게 했다. 억지로 돌아온 일상에는 군내 폭행과 성추행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민의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은 여전히 핵과 미사일을 개발한다. 그들은 미국과 한국이 위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완벽한 위협으로 격상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장시킨다. 자주국방의 꿈은 젊은 장교의 좌절이 되었다. 전작권 환수 연기 합의 직후, 느끼하게 웃고 있던 그들의 웃음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막을 수 없는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수십조원의 세금을 들여 미완성된 미국산 무기를 사야 한다.

우리의 능력은 과소평가되고 북한의 능력과 위협은 과도평가된다. 북핵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은 6자회담을 비관하게 만들고 미사일 방어와 한·미동맹 강화가 최고의 화두가 되었다. 늘 최악의 상태만 생각해야 하는 비관적 상황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만다. 그리고 비관과 이분법적 세계관은 전략적 상상력을 억압한다. 협상과 같은 긍정의 상상력은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가 된 것이다. 결국, 국민에게 “한반도 정세는 늘 불안하다”는 메시지를 주입시키며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쯤 되면 누가 우울증 환자인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래도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 협상을 해야 한다. 자주국방이 중요하다”라는 목소리는 이분법적으로 재단되어 종북이 되고 이적(利敵)이 되며 반미가 된다. 그러는 사이 방산 마피아는 총알을 막지 못하는 방탄복과 어군 탐지기를 군에 납품하고 큰 이득을 챙긴다. 누가 이적행위를 하는 것인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북한 SOC 개발협력 추진방향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_ 통일부 제공


“남북한의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고 했던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미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인도적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굶는 아이들이 가득한 북한을 향해 인권을 개선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남북이 통일되면 대박이니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전 세계를 다니며 한반도 통일의 당위성을 홍보한다. 재미동포 아줌마의 북한 관광 감상평은 이적행위가 되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유도하는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라고 한다.

안보 우울증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 증상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평화와 자주국방의 목소리를 수용하여 긍정과 희망을 제시하는 안보정책을 생산해야 한다. 모든 것을 비관하는 안보환경의 최후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다. 내년에도 또 “부질없다”고 중얼거리고 싶은가.


최종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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