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회색지대 사태’와 북한의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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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회색지대 사태’와 북한의 대처법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0. 15.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어렵게 열린 북·미 실무협상마저 결렬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추진한 한·미 군사연습과 한반도 주변의 전쟁장비 반입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해 한·미 군사연습과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문제 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당국이 한국과 미국에 불만을 갖는 것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지난 7일 동해 대화퇴 해역부근에서는 북한 어선이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9일 일본 농림수산성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들어온 북한 어선이 단속을 거부하다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조선동해수역에서 정상적으로 항행하던 우리 어선을 침몰시키는 날강도적인 행위”라고 반박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EEZ(북한명 전속경제수역)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이익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화퇴 해역은 한·일 중간수역의 밖에 위치하며 일본이 자국의 EEZ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북한도 이 해역을 자국의 전속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대화퇴 해역에서는 지난 8월23일과 24일에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북한해군 깃발을 단 군함이 마주친 바 있다. 당시 북한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전속경제수역에 불법 침입했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선박들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 쫓겨났다”고 밝혔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동북아지역에서 전면전쟁의 가능성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해상영토 침범과 EEZ 내 어로활동, 자원개발 등 회색지대(Grey Zone) 사태 발생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무력침공과 같은 정규전은 아니면서도 군함이나 전투기가 타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나 방공식별구역(ADIZ)을 무단으로 항행·진입하거나 일본 해상보안청, 중국 해안경비대와 무장어선 등이 분쟁해역에서 무단활동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회색지대 사태가 일어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주변국들은 고의로 회색지대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회색지대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부르지만,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회색지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은 전면전에 대비한 군사력 확보에 주력하다 보니 최근 발생하는 회색지대 사태에는 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북측에는 저강도 분쟁에 대비한 방위태세와 그에 걸맞은 적절한 재래식 군비가 필요하다.


북한은 회색지대 사태에 대한 대비보다 한국의 재래식 전력증강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증강이 주변국의 잠재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북한당국은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문제 삼는 한·미 군사연습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부는 2014년 10월 한·미 안보협의회회의(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합의함에 따라 조건의 충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하기로 한 세 차례의 훈련 가운데 1단계인 초기운용능력(IOC) 평가를 2019년 8월11~20일에 실시하였다. 앞으로 2020년 완전운용능력(FOC)과 2021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더 실시한 뒤 빠르면 2021년 말~2022년 초까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완료될 예정이다.


따라서 최소화된 형태로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줄여나가고 북한이 한국군의 군비증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되 투명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남북한이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상호 안보우려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비핵화 협상 중에 대북 군사공격 또는 공격위협을 금지하기로 약속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면 불가침 공약을 제공한다. 이러한 군사적 약속들을 하나로 묶어 ‘남·북·미 3자 군사협정’으로 법제화를 추진한다.


지난달 러시아 측이 북한 어선 3척을 나포한 데 이어 일본 순시선과 충돌해 북한 어선이 침몰한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당국이 주변국들과의 잠재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다. 그동안 북한당국은 서해어장을 중국 어선에 내주고 동해 EEZ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방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시켜 하루빨리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회색지대 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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