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백악관의 라푼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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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특파원칼럼]백악관의 라푼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3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안사람들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트럼프 정부 1주년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가족 대부분이 비호감이란 평가를 받았다. 큰딸 이방카에 대해서도 호감 41%, 비호감 42%로 싫다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한 명 예외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다. 멜라니아에 대해서는 호감이란 응답이 48%로, 비호감 33%보다 훨씬 많았다. 지난해 말 갤럽의 조사에서도 멜라니아의 호감도는 1년 사이에 17%포인트나 올랐고 트럼프 집안에서 최고 호감도를 보였다.

멜라니아는 준비된 퍼스트레이디는 아니었다. 화제의 신간 <화염과 분노>에 따르면 멜라니아는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한 후 뉴욕 트럼프타워에서의 안락한 생활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멜라니아에게는 조용히 보호받는 생활을 파괴할 끔찍한 것이었다고 한다. 원하지 않는 공인이 됐고 과거 모델 초년 시절의 누드 사진만 공개됐다. 멜라니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에도 아들 배넌의 학교생활을 이유로 뉴욕에 5개월이나 머물렀다. 워싱턴 생활이 얼마나 싫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멜라니아는 여성편력이 화려한 부동산 갑부 트럼프 대통령의 세 번째 부인이다. 슬로베니아 태생의 모델 출신으로 남편과는 24살이나 차이가 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에게 멜라니아의 외모를 자랑하며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고 떠들었다고 한다. 트로피 와이프는 돈 많고 성공한 중년 남성들이 얻은 젊고 매력적인 부인을 말한다. 그에게 멜라니아는 성공을 상징하는 전리품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브런치와 파티를 즐기는 뉴요커의 삶을 원했던 멜라니아에게 바늘방석 같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이 주어진 지 1년이 지났다. 멜라니아의 첫해 행보는 역대 퍼스트레이디와는 조금 달랐다. 멜라니아는 대통령 남편의 후원자임을 강변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5월 이스라엘 순방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보란 듯이 뿌리쳤다. 최근에는 포르노 배우와의 성추문에 휘말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스위스 다보스포럼 동행을 취소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을 인정한 다음날 여름휴가를 떠나겠다며 가족끼리 손을 잡고 백악관 잔디밭을 걸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던 힐러리 클린턴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멜라니아에게는 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집무실인 이스트윙의 주인다운 존재감도 부족하다. 대통령 부인의 갑질 논란은 물론 주목받는 공개 활동도 없다. 인기는 올라가고 있지만 힐러리(58%), 로라 부시(77%), 미셸 오바마(61%) 등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인 것도 이 때문이다. 동유럽 이민자 출신인 멜라니아에겐 서툰 영어부터 콤플렉스다. 변호사였던 미셸 오바마처럼 잘나가는 독립적인 여성 이미지도 아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첫째 부인의 딸인 이방카가 백악관에 사무실을 내면서 멜라니아의 위상은 더 줄어들었다. 미셸의 건강한 먹거리 운동 같은 대표적인 활동도 아직은 없다. 사이버 왕따 예방 캠페인에 나섰다가 남편 트럼프 대통령이 사이버 왕따의 지존이란 핀잔을 들었다. 하이힐을 신고 허리케인 피해지역을 찾았다가 홍수패션이란 구설에만 올랐다.

멜라니아에 대한 호감도는 어쩌면 트럼프 집안사람들에 둘러싸여 백악관에 갇힌 연약한 여성 이미지 때문일지 모른다. 돈과 권력을 가진 트럼프에 비해 약자인 멜라니아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많다는 의미다. 취임 초부터 미국 언론들은 멜라니아를 트럼프타워에 갇힌 라푼젤에 비유했다. 멜라니아는 최근 이스트윙 참모진을 대폭 보강했다. 새해에는 멜라니아가 트로피 와이프란 오명을 털어내고 당당한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를 구축해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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