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③ 유랑하는 사람들,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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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6부 ③ 유랑하는 사람들, 희망은 있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5. 12.

 포트 모르즈비 | 글·사진 김주현기자

ㆍ물고기 없는 ‘뜨거운 바다’ 도시로 간 부족 강도 전락

지난 3월27일 파푸아뉴기니(PNG) 수도인 포트 모르즈비 시내. 국가재난센터를 찾아가는데 동행인 제임스 김이 “차량 문을 잠그라”고 말했다. “치안이 불안해서 신호 대기 때나 외진 길을 갈 때 갑자기 ‘라스콜(무장강도)’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해가 지면 밖에 다니는 것도 위험하다”고 했다. 실제로 모르즈비의 은행이나 호텔, 음식점 등은 철문으로 닫혀 있고 일일이 방문객을 확인하고 나서야 열어줬다. 전시(戰時)도 아닌데 경비원들이 총기를 들었다.



                              파푸아뉴기니 듀크 오브 요크 군도의 한 섬마을에 짓다 만 집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집 주인은 지붕으로 올릴 양철 슬레이트 값 2만원가량이 없어 나머지 부분을 야자 잎으로 덮을 예정이다.


라스콜은 풍부한 천연 자원을 가진 자원부국 PNG를 빈국에 머물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수십 명씩 몰려다니며 은행과 상가를 습격하는 등 강도 행각을 벌이는 이들은 원래 부족전쟁의 전사였다고 한다. 원시적으로 살던 부족들이 별다른 경제적 수단 없이 도시로 나온 뒤 생존을 위해 라스콜로 변한 것이다.
이들은 도시 주변 야산 등에 빈민가를 형성하면서 공동 소유와 약탈로 살아가던 정글 생존의 법칙을 도시에 투사하고 있다. 도심 호텔이 대낮에 라스콜의 습격을 받거나 PNG 경찰청장이 권총 강도를 당하는 등 극도의 치안 부재가 빚어지는 이유다.

이 모든 게 가난 때문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미 중앙정보국(CIA) 등에 따르면 PNG의 실업률은 1.9%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농촌 지역을 포함하면 80%(2004년 기준)를 넘어선다. 도시에서 하루종일 일하면 10키나(약 4000원)가량을 받는다. 콜라 4캔을 살 돈이 하루 일당이다. 섬 지역이나 농촌 지역은 사실상 소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요즘 들어서는 기후변화 취재를 온 신문사나 방송사 관계자를 안내하고 받는 수고비가 주 수입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기력해진다.

라바울 인근 듀크 오브 요크 군도에 사는 아르니는 “화산과 침수 때문에 걱정이다. 바닷물이 뜨거워져서 고기가 안잡힌다”며 먹거리 걱정을 하면서도 “미노사베(Minosave)”라고 말한다. 미노사베는 “나는 모르겠다.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파푸아뉴기니 카타렛 군도의 한(Han)섬에서 부카로 가는 보트에 탄 모자. 
                                    배가 고파 보채던 아기가 지쳐 멍한 눈빛을 하자 10대로 보이는 엄마가 안쓰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가난은 섬 지역에서 더 심하다. 섬 지역은 죄다 야자 등 나무로 집을 지었다. 양철 지붕은 고급이라 엄두도 못내고 야자잎으로 엮어 사용한다. 비가 심하게 오거나 바닷물에 침수되면 그나마 물이 덜 차는 곳으로 옮겨 짓고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나마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대책으로 PNG 정부가 내세우는 해법은 ‘이주’다. 보건빌 행정부지사 레이몬 마수노는 “기후변화 대책으로 섬 주민들의 정착촌 건설, 식량 보조 등 지원, 비상시 대처 등을 세웠다”면서 “가족 단위로 한 부족을 특정 지역에 이주시켜 야자 농사 등을 짓고 살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내년 1월 40가구를 시작으로 10년에 걸쳐 섬 주민들을 ‘소개’할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레이몬 부지사는 그러나 “고립되고 교통수단도 없는 섬에 잔류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도시로 와 봐야 뭍사람들과의 마찰이 예상되는 데다 라스콜로 변할 가능성도 있어 이주를 꺼린다는 얘기다.

PNG 국가재난센터 마틴 모세 사무국장은 “내륙에 대형 농장을 만들어 섬 주민을 정착시키려 한다”면서 “우선 카타렛과 모토록 등 지역에서 부족 단위로 이주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그러나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규모나 예산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예산은 연간 500만~600만키나(약 20억~24억원)가 들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200만키나(약 8억원) 정도만 쓸 수 있다”고 했다. 모자라는 예산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에 성공해도 문제다. 보건빌 부카지역 섬 담당 행정관인 폴 토바시는 “성인식 등 부족들 고유의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것도 큰일”이라고 지적했다. PNG에는 900여 부족이 869종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 3000여개 언어 중 3분의 1이 한 나라에서 사용된다. 그만큼 각 부족들의 문화는 비슷하면서도 제각각이다.
폴은 “노래나 어로, 음식 등 거의 모든 전통 생활양식은 보통 유치원에서 부족어를 가르치며 배우게 되지만 이주 땐 정체성 상실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섬 주민들의 이주와 함께 PNG 정부가 고민하는 것은 사라지는 산호섬들의 보존 문제다. 마틴 사무국장은 “맹그로브 나무를 심어 침수를 막으려 한다”고 말했다. 맹그로브 나무는 바닷가 소금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다. 얼마전 버마의 사이클론 피해도 맹그로브 숲을 없애 피해가 더 커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나무는 해안 토양의 유실 방지에 유용하다. 그러나 이 문제도 쉽지 않다. 섬이 수천 개나 되는 데다 묘목 확보를 위한 예산도 빈약한 재정상 엄두를 못내고 있다. 정부나 국민이 자력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앞서 찾은 카타렛의 한 주민은 “두렵다”고 했다. 물이 섬을 자꾸 ‘잡아먹는’ 것도 두렵고, 그렇다고 뭍으로 나가 사는 것도 두렵다고 한다. 그는 “그렇다고 앉아서 죽을 수도 없는데…. 정부는 이주시키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섬이 잠기면 ‘미노사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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