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②-1 그린피스의 외로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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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경향신문 지나간 기획

7부 ②-1 그린피스의 외로운 싸움

by 경향글로벌칼럼 2008. 5. 26.

 파리 | 김정선기자 kjs043@kyunghyang.com

ㆍ‘과격’ 벗고 ‘과학’으로 무장한 환경 보루

창문 밖에 내걸린 ‘오염을 멈추라(Stop Pollution)’는 포스터를 보지 못했더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프랑스 그린피스는 파리 시내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교외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프랑스 그린피스의 기후·에너지 캠페인 담당관 카린 가반트는 “독립성 유지를 위해 정부나 기업에서 전혀 기부를 받지 않기 때문에 땅값이 비교적 싼 곳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환경단체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반핵 해상시위로 전세계 명성 # 길고 외로운 투쟁

그린피스는 프랑스의 ‘환경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카린 가반트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 세계를 강타하기 전부터 그린피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외롭게 싸워왔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지부가 들어선 1977년부터 그린피스는 핵실험과 원자력 발전소 설치 반대, 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 유전자 조작(GMO) 식품 유통 반대 등을 목표로 활동해왔다.

본부를 네덜란드에 둔 그린피스는 1971년 미국 알래스카 암치카 섬 핵실험에 반대하는 해상 시위를 계기로 탄생했다. 해상 시위를 위해 이들이 탄 배의 이름이 ‘그린피스’였다. 프랑스 지부 활동 역시 초창기에는 핵실험 반대가 주를 이뤘다. 핵연료 수송을 막기 위해 철길 위에 눕거나 핵실험에 항의하려고 개선문에 매달렸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같은 활동을 통해 환경단체로서의 평판을 착실히 쌓아갔다.

환경운동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무지개 전사호 (Rainbow Warrior)’ 폭파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린피스는 85년 프랑스 핵실험장인 폴리네시아 모로루아 섬을 봉쇄하고 프랑스 지배를 받는 폴리네시아인의 독립을 위해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는 정보요원을 보내 그린피스 요원들의 배 ‘무지개 전사호’에 폭탄을 장치했다. 배가 폭발하면서 그린피스 활동가 1명이 사망했다.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면서 프랑스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휩싸였고 국방장관은 해임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사임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럼에도 프랑스 정보요원들의 협박과 공격이 계속돼 그린피스 프랑스는 87년 문을 닫아야 했다. 활동은 2년 뒤에야 재개됐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이후에도 끈질긴 시위로 96년 모로루아 프랑스 핵실험장을 폐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린피스는 또 프랑스 정부가 인도에 수출한 석면 유발 해군함의 리콜을 이끌어내는 등 국제 환경운동사에 굵직한 획을 긋는 사건들을 여럿 만들어냈다.



테러·탄압 딛고 41개국에 지부 # 노력…성과

목숨을 담보로 한 이들의 활동을 바탕으로 그린피스는 짧은 기간에 거대 환경단체로 성장했다. 프랑스 지부 회원만 11만명이며 상근 직원이 50여명, 2008년 예산이 750만유로(121억원)에 이른다. 프랑스와 같은 국가 지부는 전 세계적으로 41개에 이른다.

핵 반대에서 시작했던 활동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에너지·포경·해양오염 등 환경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안을 두루 포함한다. 명성을 쌓은 뒤에는 급진적이고 과격적인 활동 방식 대신 과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인공위성을 통해 핵 폐기물을 버리는 현장을 찾아내는 등 다양한 첨단 기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료를 수집한 뒤 런던 지부에 있는 분과로 넘기면 이곳에서 정밀 분석한다. 긴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전문가들에게 수집한 자료를 보내 분석을 의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영국이나 우크라이나에 자체적인 환경 연구소를 세워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유엔환경계획(UNEP),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생물 종의 국제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 국제포경위원회(IWC), 런던(해양투기)협약, 자연과 천연자원 보호를 위한 국제 연맹(IUCNNR), 유독물질의 투기와 처리에 관한 오슬로 및 파리 협약, 남극조약 체제를 위한 회의 등 다수의 국제 기관과 협약에 참여하면서 회원국과 기구들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일간 환경정보지 ‘그린와이어’ 등 각종 매체와 보고서를 통해 시민들에게 환경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회원감소·정치세력화는 숙제
# 한계…미래

그러나 그린피스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때 500만명에 육박하던 회원 수가 2000년대 들어 280만명으로 감소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영국, 미국 등에 몰려있는 개인 기부자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꼽힌다. 결정적 순간에 이들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환경 이슈가 산업화 경향을 띠면서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그린피스의 정치세력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린피스 공동 창설자였다가 중도에 결별한 패트릭 무어는 언론 인터뷰에서 “과학에 근거한 환경 감시운동으로 시작한 그린피스가 지금은 극단주의와 정치 의제를 앞세운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핵실험 반대, 고래보호 운동 등 그린피스의 초기 의제는 철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제기됐지만 지금은 (의제가) 정치운동가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그린피스의 카린 가반트는 “초심으로 돌아가 환경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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