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혐오’는 테러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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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난민 혐오’는 테러리즘이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1. 29.

A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중동 난민에 대한 반감이 깊어간다. 테러를 당한 프랑스와 러시아의 시리아 폭격으로 난민의 수는 더욱 증가할 텐데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정에서 적대감으로 돌변하고 있다. 시리아나 이라크 난민의 입장에선 자국에서 IS를 피해 도망왔더니 이제 해외에서 IS로 의심받는 억울한 상황이다.

특히 난민 행렬이 집중되는 유럽에서 기회를 만난 듯이 의심과 비난이 득세한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유럽 담당 장관은 파리 테러가 터지자마자 유럽연합(EU) 국가들이 합의한 난민 분산 안은 무효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 바탕에는 난민이 테러를 몰고 온다는 인식이 있다. 난민의 유럽행 통로로 활용되던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철조망 설치에 나섰다. 그리스와 헝가리는 테러 이전에 이미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해 난민 진입을 막았다. 이제는 슬로베니아가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에 철조망을 세우고, 오스트리아마저 슬로베니아 쪽으로 철조망을 만드는 중이다. 결국 2015년은 시리아의 내전과 난민, 그리고 파리 테러가 유럽의 내부 장벽을 다시 세우게 만든 해로 기억될 것으로 전망된다.

1985년 체결된 유럽의 솅겐 조약에 가입한 국가 사이에 국경 검문검색이 없어진 지도 30년이다. 하지만 올 들어 난민의 유입이 대폭 증가하면서 검문검색이라는 비상조치가 여러 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가장 관대하게 난민을 받아들였던 독일과 스웨덴조차 국경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_AP연합뉴스


독일 메르켈 총리의 용기 있는 개방적 난민수용정책도 이제 물리적·정치적 한계에 도달했다. 올해 독일에 입국한 난민 신청자가 15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 이상 난민을 받아들일 물리적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독일의 내무장관 드메지에르는 이미 10월 말부터 내부 방침으로 난민을 국경에서 차단해왔다. 메르켈은 11월 들어서야 보고를 받고 사후적으로 이 비상조치를 승인했다. 지난 25일에는 스웨덴 녹색당 부총리가 눈물을 흘리며 난민 수용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발표했다. 좌파 연정이 아니었다면 더 심각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며.

이제 난민을 통제하려는 유럽의 희망은 터키다. 29일 열리는 터키와 EU의 정상회담이 주목을 끄는 이유다. 해외에 떠도는 시리아 난민 400만명 가운데 170만명 이상이 현재 터키에 체류 중이다. EU는 터키에 자금을 지원해 이들이 유럽으로 이동하지 않고 현지에 남아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중이다. 이에 터키는 단기적으로는 자국민에 대한 무비자 제도, 장기적으로는 터키의 EU 가입을 요청할 예정이다. 터키는 2005년부터 EU 가입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유럽 측이 이런저런 핑계로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에서도 난민은 난폭한 비난의 대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만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공화당이 집권하는 주들은 그 소수의 난민조차 수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벤 카슨 등은 시리아 난민 수용을 거부해야 한다며 심지어 이미 입국한 난민도 되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정치인은 고아와 기독교도만 난민으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파리 테러가 초래한 대중의 공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무책임한 언행이다.

한국의 난민과 이슬람 때리기도 심각한 수준이다. 파리 테러나 중동 분쟁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난민에 대한 인종주의,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난민에 대한 분노를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테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아랍이나 이슬람, 난민에 대한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적 존중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테러리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테러집단의 목표가 바로 우리와 그들 사이에 증오의 전선을 만들어 싸우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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