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나라의 난제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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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분열된 나라의 난제 풀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6.

부유한 기업가 출신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지난 11월 말 아르헨티나 역사상 처음 실시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여당 후보에 3% 차이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마크리는 1983년 군부 퇴진과 민선 정부 등장 이후 최초로 집권에 성공한 보수파 정치인이 되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보수파란 흔히 페론주의의 반대 세력을 의미한다. 페론주의나 그 파생물이랄 수 있는 키르치네르 시대로부터의 이탈을 주장해온 마크리의 승리는 12년에 걸친 키르치네르 부부의 통치에 대한 피로감과 국민의 분열에 힘입은 바 크다. 마크리의 지지자들은 키르치네르 정부의 사법부 포섭과 부통령이 연루된 비리 혐의, 특별검사 알베르토 니스만의 의문사 등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수사에 대한 방해와 정치 공작을 규탄해왔다.

키르치네르 시대의 특징은 노동계급과의 협력적 관계, 농산물 수출에 대한 중과세와 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키르치네르 부부는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의 폭을 넓히고 아르헨티나 우정사업본부,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사업본부, 아르헨티나항공 운송회사, 유전개발회사(YPF), 아르헨티나 철도, 연금기금 등 1990년대에 사유화된 주요 회사들의 재국유화를 추진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선이 1980년대 외채위기와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대응이었다면, 키르치네르 부부의 정책 기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 처방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아르헨티나에 선사한 ‘잃어버린 5년’에 대한 반응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야당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와 부인 줄리아나 아와다가 환호하고 있다_AP연합뉴스


남아메리카 제2의 경제 규모를 지닌 아르헨티나는 지난 25년간 실로 다양한 경제정책의 실험실이었다. 특히 2주 동안 3명의 대통령이 등장한 믿기 힘든 정치적 혼란과 길거리 폭력 사태로 표출된 2001년 경제 파산 이후 기복이 심한 놀이기구처럼 굴곡을 겪었다. 2005년에는 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2010년까지 농산물 수출의 호조와 성공적인 채무재조정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세를 선보였다. 하지만 2011년부터 현재까지 낮은 성장률, 실업률 증대, 높은 인플레이션 탓에 또다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암달러상과 환전 거래 등을 지칭하는 새로운 은어가 생겨났다.

이런 시점에 마크리는 신속하고 철저한 변화를 호소했다. 그것은 2011년 이래 실제 인플레이션 수치의 비공개와 왜곡 같은 정부 통계와 정보의 불투명성 개선, 통화와 가격 통제 정책의 폐기, 투자 유치 등을 의미했다. 따라서 기업가와 전문직 종사자들은 기대감에 부푼 듯하다. 동시에 마크리는 “지난 수년간 우리는 분열되어왔다”고 키르치네르 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지적하면서 보복의 지양과 화해를 강조했다. 마크리의 정당인 ‘공화주의제안’은 전통적인 우파 정당으로 알려졌지만 정치적 조언자들은 그가 중도파로 보이길 원했기 때문에 마크리는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빈곤층을 위한 사회기반시설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현행 복지 프로그램의 부양을 약속했다. 두 마리 토끼를 좇는 난제 풀이에 도전한 셈이다.

“2004년 이전 어떤 사회적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지만 키르치네르의 등장으로 상황이 변했다. 국가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고 말하는 현 정부의 지지자들은 마크리의 ‘변화’가 키르치네르 정부의 보편적 자녀 수당(양육비 지원)과 같이 좋은 제도와 정책을 모두 바꾸지 않을까 우려한다. 마크리에게 이런 우려에 귀 기울이길, 그리고 21세기 벽두에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과 뉴딜 정책의 폐기를 꿈꾼 미국 보수파의 이념적 접근이나 한국에서 40년을 훌쩍 뛰어넘어 옛 관행으로 회귀하고 민생을 가장해 노골적인 계급 정치를 밀어붙이려는 ‘현실 보수주의’의 스산한 기운을 반면교사로 삼길 권하고 싶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 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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