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내 2000개 병상 만들라’ 쑥대밭 된 우한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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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3일내 2000개 병상 만들라’ 쑥대밭 된 우한 기숙사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2. 12.

우한의 소프트웨어공정 직업학교 기숙사 사이에 학생들의 물품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사진 웨이보


지난 9일.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쑥대밭이 된 한 대학의 기숙사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왔다. 


우한에 있는 소프트웨어공정 직업학교(WHVCSE) 기숙사 건물 두 개동 사이로 이불, 세숫대야, 신발, 컵 같은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학교 2학년 학생 두펑(杜鵬)이 7일 기숙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 병동으로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교직원들이 기숙사를 정리하는 과정을 찍은 것이다. 동영상 속 직원들은 기숙사 사물함에 있는 물건을 마구잡이로 꺼내 치웠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추억일 사진이 담겨 있는 액자도 마치 쓰레기처럼 ‘처리’됐다. 학생들과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학교 측은 빠르게 사과했다.  


10일 새벽 발표한 사과문에서 7일 우한시에서 학교 기숙사를 격리 시설로 이용한다는 긴급 통지를 받았고 9일까지 200여명의 직원들이 이 업무에 매달렸다고 설명했다. 사흘간 기숙사 7개동을 2000개 병상이 있는 격리 시설로 개조해야 하는 명령을 이행하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학교 측은 정리 과정의 부적절한 점을 인정하고 파손품은 보상하겠다고 했다. 또 “특수한 시기의 학교의 어려움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 학교 기숙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이용할 시간도, 인력도 없었다. 학교 측은 창문으로 학생들의 물건을 던진 후 한꺼번에 정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한의 소프트웨어공정 직업학교 기숙사 내부에 생활용품이 쌓여있다. 이 학교는 기숙사를 신종 코로나 환자 격리 병동으로 개조해야 한다는 정부 통보를 받았다. 사진 웨이보


코로나19 발병지인 우한은 12일 0시 기준 누적 확진자가 1만9558명으로 중국 전체 확진자의 44%를 차지한다. 이중 820명이 사망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치사율(4.19%)을 나타내고 있다.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상과 격리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우한이 속한 후베이(湖北)성은 7일 우한시 소재 대학인 WHVCSE를 비롯해 우한 상학원(商學院), 장한(江漢)대학, 우한 선박직업 기술학원 등 4군데 기숙사를 신종 코로나 경증 환자 치료 격리 거점으로 삼고 8800개의 병상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우한의 확진환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정부의 요구도 달라졌다. 


쑨메이화(孫美華) WHVCSE 부총장은 남방주말과 인터뷰에서 7일 통지에서는 1000개 병상을 요구했지만 다음날 두 배로 늘어나 2000개의 병상을 만들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우한 상학원도 당초 1000개로 통보 받았지만 하루 만에 2400개로 바뀌었다고 했다. 


우한시 봉쇄령으로 외부로 통하는 항공, 철도, 도로가 막혀 상당수의 시민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지하철, 버스 등 내부 교통도 통제 돼 일할 수 있는 교직원을 찾기도 힘들었다. 대부분 교수들이 ‘이삿짐 정리’에 동원됐다. 한 교수는 “물건을 쓸어담으면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임무가 워낙 막중하고 시간이 절대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병실로 개조해야 할 학교는 계속 늘어나 우한시 교통학교, 우한시 제일직업교육중심 등이 추가됐다. 


전염병으로부터 인명을 구하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통지, 늘어난 요구, 부족한 인력과 시간 속에서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또 3일 만에 만들어진 격리 병동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불안한 부분은 없는지 제대로 점검할 시간도 확보되지 않았다. 


우한시는 3일 1000개 병상 규모의 임시 격리병동 훠선산(火神山)병원, 9일에는 1600개 병상 규모의 레이선산(雷神山)병원을 열었다. 두 병원 모두 열흘 만에 지어졌다.  


훠선산 병원 개원을 앞두고 중국 관영방송 CCTV는 완공되기까지 10일간의 기록을 2분으로 편집해 내보냈다.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쉴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그러면서 ‘중국속도’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빠르게 번지는 코로나19를 막고,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격리병동을 빨리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속도만 강조하면서 중요한 것들이 무시되는 것은 아닐까.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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