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타이주와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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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마오타이주와 부패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1. 15.

마오타이주는 중국 고위 관료들을 취하게도 하고 긴장하게도 만든다.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술이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중국 남부 선전시 국유기업인 광밍(光明)건설발전그룹 장(張)모 회장은 송년회 때문에 해임됐다. 정확하게는 송년회 테이블에 올라온 마오타이주 때문에 잘렸다.


지난 4일 이 그룹 임직원들은 5성급 호텔에서 연간 보고회를 한 뒤 테이블당 83만원짜리 코스요리를 먹었다. 병당 134만원짜리 마오타이주를 식사와 곁들였다. 11개의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마신 마오타이주는 2688만원어치다. 이들은 마오타이주는 옆방에 숨겨놓고 다른 병에 따라 마셨다. 그러나 ‘암행어사’식 조사로 초호화 송년회 행태가 드러났고, 결국 장 회장은 면직 처분됐다.


중국에서 마오타이주는 고급술의 대명사이자 부패의 척도다. 중국 관영 CCTV가 12일부터 방송한 반부패 선전용 특집프로그램 <국가감찰>에서는 부패로 낙마한 구이저우 전 부성장 왕샤오광(王曉光)의 집에서 4000여병의 마오타이주가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왕 전 부성장은 2009년 마오타이주 가격이 급등하자 마오타이그룹에 압력을 가해 대리점 경영권과 131t의 마오타이주 할당량을 받아냈다.


1934년 11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홍군이 대장정을 시작했을 때 마오타이주는 홍군의 사기를 진작하는 술이었다. 상처를 소독하는 약품 대용으로도 사용됐다. 독특한 향과 깊은 맛에 홍군 대장정과 맞물리는 역사 스토리까지 덧입으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가 됐다. 즐기려는 사람은 많은데, 5년 정도인 긴 제조 기간으로 공급량이 적다보니 투기나 뇌물 대상이 된다. 소장하고 있으면 가치가 상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위 관료들만 마오타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마오타이 사랑도 그 못지않다. 지난해 상하이에 중국 1호점을 낸 미국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의 대성공에도 마오타이주가 큰 몫을 했다. 중추절(추석)을 앞두고 시중보다 1위안(170원) 싼 1498위안짜리(약 25만원) 마오타이 페이톈(飛天) 제품을 내놓았다. 1인당 1병으로 구매를 제한했지만 이틀 만에 준비한 1만병이 모두 동났다. 마오타이 회장이 중추절 당일 “마오타이주는 마시는 것이지 투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투기에 가까운 마오타이주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춘제(중국 설)를 앞두고 마오타이주 사랑은 더 가열되는 분위기다.


우한시는 2016년부터 부패 공직자들에게 몰수한 뇌물을 공개 경매하고 있다. 지난해 경매에서는 총낙찰액 321만위안(약 5억4000만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30만위안(약 3억8300만원)이 마오타이주에서 나왔다. 주로 5~6병씩 함께 포장된 뇌물용 마오타이주는 15년산부터 50년산까지 다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매에서는 진품 여부를 감별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간지 남방주말은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도 가짜 마오타이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다고 전했다. 


가짜일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까지 감수하면서 고가에 낙찰을 받는 것은 중국인들의 마오타이주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허영 때문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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