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공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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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박은경의 특파원 칼럼

코로나와 공짜 영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20. 2. 5.

“많은 친구들이 나한테 계속 물어오는데, 여기서 한꺼번에 답할게. 그거 진짜야!”


중국 영화감독 쉬정이 지난달 24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쉬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마(로스트 인 러시아)>는 당초 이날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 상영이 갑자기 취소됐다. <중마>를 포함해 춘제(중국의 설) 특수를 노린 기대작 8편이 모두 상영되지 못했다. 나머지 7편은 ‘언젠가 개봉될 그날’ 기다리기로 했지만 <중마>는 동영상 플랫폼과 인터넷TV로 무료 공개하겠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전무후무한 선택에 반신반의하는 관객들에게 쉬 감독이 직접 ‘진짜 공짜’라고 답한 것이다.  


파격적인 결정은 극장 업계에서는 ‘규탄’을, 관객들에게는 ‘환영’을 받고 있다.


중국 23개 극장체인과 영화배급 관계자들은 “온라인 무료 상영은 시장 파괴 행위이며 현 영화 배급 시스템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며 관련 당국에 상영 규제를 촉구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에 발이 묶인 관객들은 무료 상영을 환영했다. 영화제작사 주가는 무료 상영을 발표한 당일 19%나 올랐다. <중마> 배급사는 극장 측과 춘제 기간 박스오피스 수입이 24억위안(약 4072억원)을 넘어야 6억위안(약 1018억원)을 배당받을 수 있다. 영화사 측은 개봉이 취소되자 온라인 업체와 6억3000만위안에 판권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온라인 무료 상영에 나섰다. 공개 첫날에는 바이트댄스와 연관된 12개 동영상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이 다운로드 차트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개봉 전만 해도 “쉬정 감독이 나한테 영화표 한 장 값 빚졌다”는 혹평이 나온 영화였지만 온라인 상영으로 판세를 뒤집었다.


지난해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 누적 수입은 642억위안(약 11조원)으로 전년 대비 5.4% 성장했다. 온라인에서 영화표를 사고 오프라인 극장으로 관람하는 것이 그간의 중국 관객들의 영화 소비 행태였다. <중마>의 온라인 상영을 시작으로 온라인 선 상영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드라마 시장에서는 방송국이 아닌 각 동영상 플랫폼으로 옮겨가 플랫폼 자체 제작 대작 드라마가 드라마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2002~2003년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은 의료진을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아픈 사건이다. 그러나 전염병의 공포는 온라인 쇼핑 성장의 계기가 됐다. 그동안 온라인 쇼핑을 꺼리던 이들이 전염병으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전자상거래 첫 경험을 시작했다. 알리바바의 타오바오, 징둥 등 중국의 대표적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이 시기에 성장했다. 2003년 알리바바 매출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었다.


중국청년보는 4일 “그동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후 소셜미디어로 영화평을 나누는 것이 고정 패턴이었지만 <중마>의 온라인 선 상영은 오랫동안 몸에 밴 소비 습관을 깨뜨렸다”고 했다. 사스가 인터넷 쇼핑을 경험시켰듯이 신종 코로나는 극장 관람에 대한 고정 관념은 흔들었다. 극장업계들의 저항이 거센 것은 그만큼 시장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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