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평화협정과 한반도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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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공감]평화협정과 한반도의 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3. 1.
평화협정이 화제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까지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최근 워싱턴에서 이루어진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연설과 회견 내용은 예상 밖이었다.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특히 한반도가 조절 불능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하며 중국도 북한에 대한 다른 입장을 갖는 부류들도 그러한 시나리오는 원하지 않는다.’ 케리와 왕이의 언설은 북핵에 강압적 제재가 아닌 협력을 통해 비핵화를 유도하는 차원으로 북·미관계를 전화하고 북·미간 경제 통상까지 고려하고 있으며 5월 안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정도라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미간 협의로 제출된 유엔 안보리 제재안이 사실은 북한을 고립무원으로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 그리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투 트랙을 병행하여 추구하는’ 맥락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보리 결의안 내용이 초강수로 보이지만, ‘생계 목적’의 경제활동은 제외한 바와 같이 이 제재안은 북한의 6자회담과 세계무대로의 복귀, 한반도 긴장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러시아도 상임이사국으로서 제재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요청, 결의안이 쉽게 채택되리라는 예상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철수 등 한국정부의 강경정책에 조응하여 중국이 북한 제재안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경로를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서 중·미간 합의를 이루고 그 ‘병행 기획’을 추동하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 사드 배치에 미온적인 것이나,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미국에 평화협정을 채택하지 않고 전쟁 상황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와중인 것 또한 지난 63년 동안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정전상태에 놓여있던 한반도의 변화를 예고해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물론 평화협정 체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북한과의 갈등관계에서의 완패를 의미한다. 그리고 미국 내 군부 매파 등 보수세력의 반발과 동요 등 넘어야 할 산은 높다. 그런데 북한은 그 시한을 36년 만에 열리는 노동당 당대회까지 2개월로 명시했다. 거기에 한국정부는 한국전쟁 직전 이승만의 북벌론을 상기시킬 정도로 준전시 상태에 돌입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위험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긴급하게 6자회담이라는 틀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중국은 6자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입지를 강고하게 유지하며 한반도 긴장완화와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위상을 강화해 나가는 국면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북·미간에만 체결되면 되는 것인가. 미군 철수, 북·미간 경제교류도 가능해질 이 어이없는 한반도 평화. 문제는 한국이 이 과정에서 완벽하게 타자라는 사실이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가 아니니 당연한 게 아니다. 보수정권이 그 외교적 무능함과 북풍 정치로 주체적 입지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기가 막힌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이 보수정권들은 남북관계나 아시아 지역 관계에 대한 어떤 전망도 없이 한·미·일 군사안보체제에 기생하고 강경일변도로 북핵에 대응해온 결과, 이 역사적인 순간에 우리는 망연자실 처분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도탄에 빠진 것은 박근혜 정권이고 대책 없는 보수야당이지 결코 우리 대다수 한국민들이 아니다.

갖가지 폭력정치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처럼 내리던 눈, 세상 모두에게 고루 내린 함박눈조차 그 평등한 평화로 일러주었다. 저 순간의 설원처럼 다른 문명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한반도의 봄은 진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백원담 |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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