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의문사와 비정상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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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의문사와 비정상의 그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9. 21.

지난 한 달여 동안 한국 사회는 윤모 일병 사건에 공분했다. 하지만 야비한 집단따돌림과 잔인한 폭력, 지휘관의 방조, 축소와 은폐, 거짓말과 책임 회피 등 모든 적폐가 총출동한 이 경악할 만한 사건에 앞서 한국 군대에서 벌어진 비극, 특히 진상규명이 요원한 의문사의 사례는 결코 적지 않았다. 군 의문사와 관련해 10년 넘게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자식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고 여전히 냉동고에 보관 중인 경우만 18건에 이른다고 한다.

1982년 12월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밝힌 비극의 일단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정치적 이유로 실종된 이들이 12만명에 육박합니다. 이는 마치 스웨덴 웁살라 시에서 모든 주민의 행방을 아무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문명국이라 자부하던 인구 250만명의 우루과이에서는 다섯 명 가운데 한 명꼴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강제로 이주하거나 망명한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은 노르웨이보다 더 인구가 많아질 것입니다.” 가히 의문사의 대륙이라 할 만한 라틴아메리카의 믿기 힘든 현실에 비해 한국의 충격적 실상은 그래도 나은 편인가?

한국 현대사 역시 냉전 대립, 군의 정치개입과 인권침해 탓에 어두운 그늘을 적잖이 지니고 있다. 게다가 과거사 정리는 힘겹기 짝이 없다. 너무 늦게 시작된 까닭 외에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성취와 보람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정략적 의도로 훼손한다는 등의 구실을 앞세워 세월이 약이다, 새로운 미래로 향하자 식의 일반적 정서를 오도하고 위조하는 미봉책이 판쳐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끈질긴 진상규명, 진지한 사과와 재발 방지의 다짐에 익숙지 않고 억울한 이들의 양산과 대중의 국가기관 불신이라는 악순환을 겪곤 했다. 국가기관뿐 아니라 이른바 적하효과가 나타나는지 지방자치단체, 기업, 병원, 학교까지 이목을 끄는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축소하거나 숨기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세월호의 비극도 한 맺힌 이들을 양산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한 유족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군 의문사 유족이 외치는 대국회, 국민 호소대회’에 참석해 다른 가족의 사례 발표를 듣다가 오열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 8월 말 대학 선배 한 분의 추모식과 묘소 이장 행사가 열렸다. 직접 참석하진 못했지만 자세히 안내해준 다른 선배 덕분에 간접적으로나마 진행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재학 중 군에 입대한 뒤 1987년 9월 스스로 분신한 최우혁 선배의 유해를 27년 만에 외로이 누워있던 양주의 한 공원묘지에서 마석의 모란공원묘지로 이장하는 행사였다. 당시 군 관계자들은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했을뿐더러 시신을 서둘러 매장했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한시적으로 활동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와 ‘기념사업회’의 꾸준한 노력 끝에 최 선배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고민에 의한 분신자살”에서 “진상규명 불능”을 거쳐 결국 보안대의 관찰, 공작, 군대 내의 가혹행위 등에 항거한 분신 사망으로 결정되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를 그토록 치열하고 무겁게 살게 하며 끝내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도록 만든 시대가 한스럽다. 동시에 엄청난 고통 속에 떠나갔을 이를 27년 동안 가슴에 묻고 추모하며 그 삶의 의미를 되살리고 기억하려 한 친구들의 우정,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명예졸업장 수여 등)을 위해 백방으로 힘쓰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실천한 지인들의 의리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선배와 지인들을 두었기에 나는 시린 가슴 한편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단지 경제적 도약을 바라는 구호가 아닐진대, 그동안 비정상의 그늘 속에 감춰지고 호도된 진상이 밝혀지고 과거사 정리란 어떤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상식의 회복이자 정상으로의 복귀이며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에 대한 공감이 늘어가길, 그래서 한 맺힌 이들의 해원(解寃)에 힘을 보탤 수 있길 소원한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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