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진정한 ‘게임 체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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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진정한 ‘게임 체인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27.

지난 7월17일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동부 상공을 비행하다 지대공미사일에 의해 피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두고 미국 외교 권위지인 포린폴리시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온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에 성공했고, 이후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합병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친러 반군에 무기를 공급하며 영향력을 증대시켜온 푸틴의 행보에 결정적 타격을 줄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반격의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이 유럽 국가들에 대러 제재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압박했지만,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의식해 매우 소극적이었던 분위기를 일시에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피격사건으로 네덜란드, 호주, 영국, 독일 등이 많은 희생자를 낸 터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번 피격사건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게임체인저로서의 함량에 미달한다. 하나는 러시아의 개입 정도에 대한 논란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정황 증거들을 종합하면 러시아가 반군에 공급한 미사일이 격추에 사용되었으며, 무기 사용을 위한 제반지원이 제공되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에 이번 사건의 전적인 책임을 부과하기는 어렵다. 제시된 도청자료들은 민항기 격추를 사전에 인지했다기보다는 오인사격 이후 당황한 모습들에 가깝다. 푸틴이 사고 처리와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못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유럽의 태도인데, 과연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전과 달리 대러 압박에 적극 동참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프랑스와 영국이 대러 무기계약을, 또 독일은 이미 벌인 대규모 투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천연가스에 대한 깊은 의존도를 이번에도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 말레이시아항공도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외신들은 미 정보당국이 이미 6월 말에 러시아의 미사일이 국경을 넘어 반군에 전달되었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말레이시아항공 역시 비용절감을 위해 위험을 무시하고 비행을 강행한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당분간은 책임공방이 이어지고, 러시아의 반군 지원이 조금 주춤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여객기 추락 현장의 안타까운 부모 호주인 예리 디진스크(오른쪽)와 앤젤라 러드하트-디진스키(왼쪽) 부부가 26일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그라보포의 말레이시아 항공기 추락 현장에서 딸을 찾아 헤매며 눈물짓고 있다. _ AP연합

눈을 한반도로 돌려보면 여기서도 게임체인저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 경고의 일부인데, 북한의 4차 핵실험설이 불거진 지난 4월 윤병세 외교장관이 시동을 걸었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그것이 한반도 정세를 일거에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 인사들은 비슷한 종류의 강경언사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러나 핵실험에 대한 억지효과는 일부 있을지 모르겠으나 진정한 게임체인저로는 역시 함량미달이다. 전쟁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고 해도 사실상 우리에게 주어진 옵션은 크지 않다.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중국이 대북제재에 합류할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 있는데 중국이 직면한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선택이다.

한국과 우크라이나 할 것 없이 진정한 게임체인저는 강경대응이 아니라 협상을 통한 타협안의 도출이다. 불을 붙이는 행위가 아니라 불을 끄는 외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북한의 핵능력이 제고되는 것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협상에 나서야 한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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