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일 청소년 평화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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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한·일 청소년 평화교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29.

1998년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로 결성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가 2010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한국 학생들을 초청, 교류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 한·일 청소년 평화교류가 시작됐다. 그뒤 해마다 광주와 나고야의 청소년들은 광주시교육청 지원하에 교류방문을 하며 한·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정을 쌓아왔다. 올해로 벌써 5회째를 맞았다.

한·일 갈등으로 상대국 국민에 대한 호감도마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한·일 청소년 평화교류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일본과의 교류를 진행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일본 보수정권의 장기집권과 우경화 정책, 그리고 거기에 추종한 언론의 영향으로 한국 관련 문화·역사 교육이 왜곡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우리도 ‘문창극 사건’ 등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일본 지도층에도 ‘근로정신대’ 등의 불행한 과거사를 교훈으로 수용해 한·일의 새로운 미래를 조명하고자 하는 양심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한일 친하게 지내요' 모임 소속 재한 일본인들이 20일 서울 인사동에서 일본우익단체의 반한시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필자는 여기서 일본의 양심적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의 <해협>을 한·일 교류 진전의 예로 거론하고 싶다. 이 작품은 1992년 간행되어 2012년 31쇄까지 나왔다. 일본 집권층과 기업가들의 결탁으로 강제징용과 한인 피해 사실을 은폐하는 사회 분위기, 왜곡된 역사교육으로 근로정신대, 나나쓰다테 사건 등이 일본인에게 터부시되고 있는 현상에 비추어 의외로 많이 읽히고 있기에 설득력이 있으리라.

스토리를 살펴보면, 주인공 하시근이 강제징용된 동료 서진철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고 대한해협을 건넌다. 47년 만에 해협을 다시 건너는 이유는, 강제징용의 선봉장으로서 갖은 방법으로 한인 노동자들을 못살게 굴던 야마모토 산지가 N시 시장의 4선을 노려 시 남쪽의 폐석산과 폐광 흔적을 없애고 기업을 유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곳(폐석 더미)에는 태평양전쟁 말기 강제징용돼 노역에 시달리다 희생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무덤과 위패가 있다. 하시근은 해협을 건너 아들과 재회하고, 시장선거 공개토론회에서 청중 토론자로 나서 야마모토 산지의 부정과 과거를 폭로함으로써 폐석산을 허물어 가해의 역사를 지우려는 야마모토 산지에게 타격을 입히며 복수한다.

작가는 정신과 의사이기에 주로 병원 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심리소설을 발표하다가, 한인 피해자의 증언과 대화치료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강제징용의 문제를 주제로 한 역사소설 집필에도 심혈을 기울인 셈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작가가 주인공이 일본인 여성과의 사랑으로 출산한 자신의 혈육(도키로)에게 남긴 유언을 통해 말한 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일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에 대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유지를 잊지 않는 한 역사는 왜곡되지 않는다.” “너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두 민족의 아름다운 가교가 되어주기 바란다.” 진정한 한·일 우호의 의미는 이와 같은 것이리라.

한·일의 과거가 어찌 왜곡한다고 미화될 수 있으며, 지운다고 잊혀질 수 있겠는가? 과거를 직시하고, 그 공감대 위에서 과거 불행을 거듭하지 않기 위해 한·일 시민이 서로 얼싸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이번 한·일 청소년 평화교류에 참가해 광주와 나고야에서 청소년들에게 일본 작가의 작품에 그려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사건에 대해 언급하고, ‘안중근 의사에게 영향을 받은 일본인들의 활동’에 대한 숨은 교류의 역사를 들려줄 예정이다. 한·일 청소년 평화교류에 참가한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한·일 평화공존의 정신을 깨우치는 자극제가 됐으면 좋겠다.


김정훈 | 전남과학대 교수·근로정신대시민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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