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폭격으로 IS를 막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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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폭격으로 IS를 막을 순 없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2. 1.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유가와에 이어 억류하고 있던 고토마저 처형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IS에 대한 응징을 즉각 천명했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서방세계의 비난도 이어졌다. 그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IS 궤멸을 위한 국제공조에도 다시 힘이 실릴 예정이다. 덩달아 우리 사회에서도 반테러법 제정 논의가 다시 점화됐다. 그러나 이러한 반테러법과 무차별 폭격으로 급진 테러조직들이 궤멸되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태의 본질에 대한 서구사회의 교묘한 왜곡과 테러에 대한 진지한 원인 분석이나 처방 없이 테러 양산을 부추기는 공격적 발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참사 이후 미국은 곧바로 ‘대테러 보복전쟁’을 시작했다. 그해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에는 9·11 테러와 아무 상관없는 이라크까지 공격해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생존권 투쟁을 하는 정치조직인 하마스와 헤즈볼라까지 테러조직으로 묶어 무차별 민간인 살상을 자행했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적이면서도 중요한 명제 하나를 떠올려야 한다. ‘모든 인류의 생명가치와 생명의 무게는 동등하다’는 평범한 진리다. 이라크 침공의 예만 보더라도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군 전사자만 4491명에 달했다. 그들은 성조기에 휩싸여 엄숙한 의례를 통해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영웅적 군인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기념된다. 국가의 당연한 책무이고 좋은 국가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도 그들에 의해 죽어간 무고한 민간인들의 죽음에 대해 가슴 아파하거나 기억해본 적이 있는가? 미군과 전쟁하다 죽은 사담 후세인 군사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미군이 아니었으면 오손도손 살아갔을 이름 모를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의 참상이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죽어간 민간인만 수십만명이다. 희생자 숫자는 민간인 조사기관에 따라 적게는 15만1000명에서 많게는 103만3000명에 이른다. 미군 당국은 아예 이라크 민간인 숫자는 조사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죽음은 대테러전쟁의 수행에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직계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100만명이 넘고 이라크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전쟁 난민이 되거나 전쟁 피해자로서 극도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미군 공격의 직접적인 희생자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이런 참혹한 상황을 미국과 그에 동조하는 이라크 정권의 책임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랍 사회에서는 가족이 모든 가치의 우선이다. 따라서 가족의 복수는 일종의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피값인 ‘디야(diya)’가 지불되지 않는다면 똑같은 피의 복수를 하는 전통이 아직은 매우 강하다. 이러한 분노와 증오의 문화가 팽배한 토양에 알카에다와 IS가 등장하자 수십만명의 동조자가 복수를 위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류의 보편가치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IS는 단순한 복수살인집단이 아니라 성스러운 종교적 사명을 완수한다는 기가 막힌 포장을 곁들였다. 체계적인 훈련도 받고 첨단무기도 만져보고 자신이 순교하더라도 살아남은 가족들이 보살핌 받을 수 있다는 약속도 매력적이다.

일본 도쿄 시민들이 1일 고토 겐지 참수 소식을 전한 신문 호외를 착잡한 표정으로 받아들고 있다. _ AP연합


극단적인 반인륜적 테러조직을 국제공조를 통해 응징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동시에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무고한 시민 증오 집단에 대한 치유와 진정한 사죄도 훨씬 더 중요한 선결과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에 3조40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도 테러는 그 이전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는 모순의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증오와 복수의 문화를 치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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