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민주적 자본주의와 권위적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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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정동칼럼]민주적 자본주의와 권위적 자본주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2. 5.

작년 러시아의 크리미아 반도 병합으로 국제정치에 지정학이라는 용어가 빈번히 등장했다. 지정학(geopolitics)이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국제정치가 지리적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란 공간에 의한 제약과 영향 속에서 항상 살고 있기 때문에 지정학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러한 지리적, 공간적 요인들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때이다. 특히 지리적인 이유 때문에 생명과 재산, 그리고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지면 우리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다고 말한다. 최근 지정학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과거에 비해 커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데 국가 간 영토나 해역 분쟁의 위험성이 커진 것에 대한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지정학적 우려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향후 국제정치의 진짜 모습은 지정학적 갈등이라기보다는 국가 운영의 모델과 정치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한 번 국제정치의 핵심으로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제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것이 국가가 살아남느냐 없어지느냐의 안보 문제라기보다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잘 나가느냐 아니면 빈곤과 불황 속에서 허덕이느냐의 국가 경쟁력 문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남의 나라를 빼앗던 제국주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는 침략에 의해 나라가 없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나라의 숫자가 늘어나기만 하여 종전 이후 나라 숫자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보더라도 전쟁 이후에 국가를 병합하지 않고 이라크라는 주권국가는 그대로 살려두었다.

한편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한 세계화는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 버렸는데 이 시장 속에서 국가들은 살아남지 못하면 주권을 잃고 식민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허덕이는 국가로 남아있게 된다. 즉 세계는 군사적으로 강한 국가와 약해서 곧 없어질 국가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성공적인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두 부류로 구분된다. 그래서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계속 경제적으로 잘 나가고 또 어떠한 정치 및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빈곤과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게 되는데, 당연히 경제적으로 잘 나가는 국가들은 성공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성공 모델을 따라 하려 할 것이다.

예전에는 자본주의 경제에 위기가 왔을 때 사회주의라는 잠시 대안적인 성공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각기 다른 성공 모델을 중심으로 하여 국가 군의 경쟁과 대립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주의가 대안이 아니어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갈구하게 된다. 최근 공교롭게도 자본주의 안에서 잘 나가는 모델은 민주주의를 채택하여 우왕좌왕하는 선진국들이기보다는 중국, 싱가포르 같은 권위주의적 국가자본주의 모델들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적 장점은 한 정권이 장기적 집권을 하여 중장기적 확실성을 가진 계획과 투자가 가능하고, 권위적으로 사회적 안정을 달성하고, 사회주의와 달리 인센티브를 확실하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영국 런던 의회 광장에 나온 반자본주의 시위대 _ AP연합


최근 유럽의 위기 속에서 헝가리가 이러한 모델이 국가경쟁력을 가진다고 공공연히 선언한 것을 보면 이러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매력은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과 미국, 유럽의 지속적 불황 속에서 많은 국가들에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세계적 차원의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며 세계는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 군과 권위적 자본주의 국가 군의 대립과 경쟁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성립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국제정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대립, 경쟁하는 과거 냉전과 지정학이 부활하기보다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세계시장 속에서 경쟁하는 정치경제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이것의 함의가 무엇인지 차분히 분석해야 할 때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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