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사우디·이란의 치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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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 사우디·이란의 치킨게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20.

미국의 금리 인상과 저유가로 신흥국 경제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다. 2008년 7월 배럴당 140달러가 넘던 유가는 이미 30달러대 초반으로 추락했다. 배럴당 20달러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은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추가 하락을 가져오고 있다. 저유가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에는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중동, 러시아, 중남미 등이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

유가 하락의 가장 큰 이유는 세계 경기 둔화와 공급과잉이다. 그러나 최근 유가 급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도 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2014년 11월 감산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소위 ‘치킨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포석이었다. 유가를 셰일가스 생산단가보다 낮춰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사우디 주도 산유국들의 계산이다. 사우디 등 산유국들은 재정악화라는 출혈을 감내하면서도 극단적인 상황까지 셰일가스와 경쟁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미국도 이 흐름을 탔다. ‘러시아 죽이기’였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군사적 개입을 한 러시아의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이자 알제리 에너지 장관인 차키브 켈릴_AP연합뉴스


그런데 사우디가 벌이고 있는 이 치킨게임의 더욱 중요한 경쟁 상대는 셰일가스와 더불어 이란이다.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복귀하고 있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유가를 낮춰 이란의 경제 재건을 최대한 늦추려는 것이 목표다. 사우디 주도의 아랍 국가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란이 가진 잠재력이다.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이란이 중동의 패권국가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세계 2위 혹은 3위의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이 외에도 구리, 철광석, 아연 등 부존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수자원도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풍부하고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인구도 8000만명 이상으로 거대한 시장이다. 터키와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 내 세 번째 군사대국이다. 정규군 40만명 그리고 공화국수비대 12만명과 더불어 100만명 이상의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다. 전투기와 잠수함을 조립해 배치하고 있으며 중장거리 미사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와 영향력 확대는 중동의 정치지도를 크게 바꿀 것이다. 이미 전초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내부적, 정치적 혼란과 충돌과 더불어 큰 틀에서도 중동이 급변하고 있다. 이집트 정권이 붕괴하고 정치적 혼란을 겪는 상황에서 핵 협상 타결 후 이란이 이집트와 사우디 중심의 중동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중동 정세를 ‘시아파 초승달 vs 수니파 초승달’로 비교하는 분석이 자주 나오고 있다. 시아파 초승달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수니파 정권이 붕괴하면서 등장한 용어다.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이라크의 집권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란을 축으로 서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 최대 정파 헤즈볼라가 연결된 것이다. 남쪽으로는 바레인, 사우디 동부, 오만 등에서 시아파가 다수 거주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수니파 초승달은 터키에서 시작되어 요르단을 거쳐 사우디 등 걸프국가로 이어지고 있다.

그 교차로에 있는 나라가 바로 시리아다. 시리아 정권은 시아파의 일파인 알라위(Alawi)파로 인구의 13%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인구의 70% 이상은 수니파다. 시리아 사태가 어떻게 귀결되는가에 따라 중동의 정세는 크게 요동칠 것이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시아파 정권이 붕괴하면 수니파 초승달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이다. 이란이 시리아 정권을 지지 및 지원하고 있고, 사우디가 반군을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동 내 패권을 놓고 사우디와 이란의 치킨게임이 이미 시작됐다. 치열한 신경전은 물론 저유가라는 위험한 카드를 놓고 두 국가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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