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프랑스 청년들은 더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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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그리하여 프랑스 청년들은 더 붉어졌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5.

미치도록 푸른 가을 하늘의 아름다움이 세상의 모든 미와 추를 압도하던 지난 주말, 루아르강변에 늘어선 고성들을 여행하면서, 그나마 15유로까지만 허용되던 기름을 차에 넣기 위해, 문 열린 주유소를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찾아다녀야 했다.

파업 중이던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일터에 복귀했다는 실망(?)스러운 기사를 르피가로가 타전하던 것이 벌써 일주일 전. 그 보도가 맞다면, 프랑스 전역의 주유소는 정상 가동했어야 한다. 언론들은 파업국면이 완전히 해체된 것처럼 성급하게 기사를 타전했으나 그것은 정부의 희망사항을 받아 적은 것에 불과했다. 2주간의 방학에 들어간 학생들, 자녀들과 함께 휴가를 떠난 많은 시민들이 제자리에 복귀하는 이번 주말,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다시 시동을 건다.

그 사이 르 카나르(le Canard)지는 사르코지가 지시해온 언론사찰을 폭로했고, 사건의 진위를 놓고 치열한 정치공방이 불붙기 시작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 보이는 그의 20%대 지지율을 더 끌어내릴 수도 있는 치명타가 발생한 것이다. 사르코지가 무리한 방식으로 연금개혁을 밀어붙인 것도, 이마저 놓치면 통치 불능의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긴박한 정치적 판단에서였다고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공화정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대통령이 헤쳐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크리스티앙 블랑·알랭 주아양데 전 장관(왼쪽부터)
사퇴한 알랭 주아양데 해외담당 장관은 지난 3월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용기를 빌리면서 11만6500유로(약 1억8000만원)를, 크리스티앙 블랑 파리 교통개혁 장관은 쿠바산 시가를 구입하기 위해 1만2000유로를 부처 예산에서 지출했다.


첫 번째 난관이 사르코지 자신이 파놓은 수많은 비리와 불법의 수렁이라면, 두 번째 난관은 프랑스 청년과 학생들이다. 짧은 방학 후, 이들은 개학을 맞았다. 그리고 오늘의 프랑스 청년들은 어느 때보다 붉고 격렬한 피를 가졌다.

프랑스 국립청소년대중교육연구소(INJEP)의 최근 발표는 1980년대 사회당 미테랑 집권 당시보다, 사르코지 집권 아래 청년(18~29세)들이 훨씬 더 격렬한 좌파성향을 지녔음을 입증해 보인다. 사르코지 집권하의 프랑스 청년 절반(48%)가량이 한 번 이상 정치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 반면, 81년 미테랑 시절 청년들의 정치집회 참석비율은 34%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에서 “혁명적인 행동에 의해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켜야 한다”고 응답한 청년의 수는 80년대 11%에서 현재 28%로 급격히 늘었다. 자신을 극좌로 규정하는 청년들의 비율이 7%에서 13%로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80년대의 청년들이 부르짖던 것이 “자유”였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명백하게 “평등”을 요구한다고 이 연구조사를 주도한 사회학자 베르나르 루데(Bernard Roudet)는 지적한다. 사르코지 집권 후 사회적 불평등의 폭발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프랑스국립통계청(Insee)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7년 사이, 연소득 50만유로(약 8억원) 이상 고소득층이 6500명에서 1만1000명으로 70% 증가했다. 소수민족·불법 체류자에 대한 차별이 강화되고, 더불어 이 사회가 안고 있던 모든 차별의 골은 깊어졌다.



                   프랑스 파리의 고등학생들이 14일(현지시간) 정부의 연금개혁법안에 반대하는 노동계 시위에 동참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연금개혁안에 따라 정년이 60세에서 62세로 연장될 경우 젊은층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파리 | 로이터뉴시스


결국 모두의 뺨을 후려치는 듯한 사르코지의 통치는 좌파의 가면을 쓰고 오른쪽으로 우연하게 미끄러져 가던 미테랑과 그 후의 사회주의자들이나, 미지근하던 시라크식 우파정치가 결코 이룰 수 없던 결과로 미래의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할 수 있는 날카로운 청년들의 정치의식을 구축하게 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감히 나랏일에 나서는 일”이 충분히 상식에 속하며, 학생들이 학교 앞에 바리케이드를 친 걸 가지고 교장이 경찰에 신고하면 오히려 그 교장이 벌금을 무는 이 나라에서만 가능한 뜻밖의 소득이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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