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리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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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사브리나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19.

23살 때, 중고차를 구입하려던 부모가 모자라는 돈 대신 건넨 후, 3년간 노예로 착취되다가 병원 앞에 버려진 사브리나의 이야기는 현실에선 차마 존재할 수 없는 잔혹동화처럼 들린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서 한층 더 자극적인 뉴스로 다가왔다. 왕을 단두대로 끌고 간 후 자유·평등·박애의 깃발을 휘날렸고, 지금도 시시때때로 우린 여전히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그곳에서.
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한 인간을 노예로 부리며 파멸시켜 갔다는 사실은, 세상 곳곳에서 허물어져가는 인간성 파괴의 흔적과 잔인하면서도 나약한 인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라스폰트리에는 영화 <도그빌>에서 평범해 보이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한 여자를 서서히 노예로, 그리고 창녀로 만들어가는 일에 가담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의 영화가 폭로하는 것은 인간의 잔인함보다 그들의 나약함이다.


               
17일(한국시간) 영국 타블로이드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23살의 사브리나는 16살이던 2003년 
600파운드(약 108만원) 상당의 중고차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부모로부터 프랭크 프라누(58)와 
플로렌스 카라스코(56) 부부에게 넘겨졌다. 이들 부부는 사브리나를 파리 인근의 여행자 야영지로 데려갔고 
이때부터 사브리나의 지옥같은 노예생활이 시작됐다. 사진제공/데일리 메일



며칠 전, 프랑스 언론들은 벨기에의 특급호텔 한층 전체를 연간 1500만유로를 주고 임대해서 쓰고 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주들이 그 속에서 노예들을 부리며 지내고 있던 사실을 보도했다. 벨기에 사법 당국은 이들에 대한 사법절차를 밟는 중이다.
28세에서 44세에 이르는 17명의 여자들은 공주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53개나 되는 방이 대부분 비어있음에도 복도에서 앉은 채로 잠을 자야 했고, 외출은 물론 전화 인터넷 등 외부와의 모든 접촉이 차단된 채 신분증도 빼앗기고 살아야 했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던 그 호텔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일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사브리나와 그녀들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한달 150유로가량의 급여가 있었다는 사실. 그나마 13만5000유로의 임금이 체불되어 있었다고 사법당국은 밝혔다.
경찰에 의해 17명의 여자들은 비로소 노예의 속박에서 놓여났다. 상당수의 여자들이 그들의 주인이었던 자들의 만행을 고발했던 반면, 일부는 다시 그 노예생활을 지속하기를 희망한다고 르몽드지는 전한다. ‘자발적 노예상태’는 신자유주의가 좀먹어가는 현대의 곳곳에서 목격되는 징후다.




지난 8월 사우디에서 한 고용주가 스리랑카인 가사도우미 여성 아리야와티(49)의 몸에 
18개의 못과 바늘을 박아 학대한 사실이 알려져 스리랑카인들의 분노를 샀다. 
아리야와티가 지난 8월26일 스리랑카 콜롬보 인근 마타라의 병원에서 진찰받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부자와 귀족들의 노예 사용은 언제나 묵시적으로 허락되고 소리없이 자행되었으며, 사브리나의 부모와 그녀를 노예로 부린 사람들처럼 상대적으로 하층민 계급들이 저지르는 그로테스크한 범죄들만이 유난스러운 주목을 받는다는 점이다.

한국언론이 사브리나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던 것과 달리, 벨기에의 사우디아라비아 공주들 얘기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던 것처럼. 불평등과 차별이 가속화되는 사회 속에서 밑바닥에 처박힌 사람들이 처한 모럴은 심각한 수준의 손상을 입는다. 짓밟힌 그들은 올라서고 싶은 또 다른 핍박의 대상을 찾는다.


사브리나 잔혹동화에서 그나마 온기가 느껴지는 대목은, 반송장이 되어 병원 앞에 버려진 그녀를 병원에서 1년에 걸친 수술과 치료 끝에 정상에 가깝게 회복시켜 주었다는 사실이다. 사르코지 정부가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아직 이르지 못한 프랑스의 공공의료가 살아있었기에 이루어 낼 수 있는 기적이다.

인간성이 허물어진 그 자리에도 공공의 이익과 선을 추구하는 틀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우린 살아나갈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년반 후 사르코지가 자신의 뜻대로 모든 공공의료체계를 파괴하는데 성공한다면, 제2의 사브리나는 잠시 병원 앞에 방치되었다가 공동묘지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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