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헬싱키프로세스’에서 배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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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고]‘헬싱키프로세스’에서 배울 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6. 12.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방문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헬싱키는 바로 유럽에서 냉전종식의 단초를 제공했던 ‘헬싱키프로세스’가 시작되었던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헬싱키프로세스는 1975년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유럽 35개 국가가 참가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채택된 ‘헬싱키 최종협약’에 의해 시작됐다. 이 협약이 채택된 이후 이행 여부를 검토하는 회의가 유럽 도시에서 개최됐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마침내 1989년 동구권의 붕괴와 1990년 독일통일의 초석이 됐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한반도통일과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번영을 위한 제도적 틀을 구축하고자 하는 문 대통령은 헬싱키프로세스의 교훈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핀란드는 강대국인 러시아 및 독일과 인접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생존을 위한 줄타기 외교정책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운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핀란드가 약소국이었음에도 초기 헬싱키 최종협약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핀란드의 중립적 외교정책 때문이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무력 진압한 소련은 격앙된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범유럽안보협력회의 창설을 제안했다. 소련은 이를 위해 친러시아 중립국가인 핀란드에 실무협상을 위한 준비과정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고 서방 측이 동의함으로써 핀란드가 유럽안보협력의 중심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핀란드가 타 유럽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특히 당시 유럽안보의 핵심 이슈였던 동서독 분단 문제에 중립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와 헬싱키프로세스는 지리적, 역사적으로 많은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헬싱키프로세스의 교훈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함의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헬싱키프로세스는 1972년 동서 양 진영 간 긴장완화가 최고조에 달한 데탕트라는 국제환경이 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했고 인접국가들과의 국경선 문제도 해결됐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긴장이 완화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남북 간, 북·미 간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반면 헬싱키프로세스는 헬싱키 최종협약이라는 합의안을 도출함으로써 동서냉전의 종식을 가져왔으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북핵 문제라는 걸림돌로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이 진행되는 현시점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운전자 역할을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핀란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외교노선이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결실을 맺지 못했던 것은 강대국들의 동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핀란드가 유럽안보협력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국들의 자발적 요청과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더 나아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구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이 한국의 역할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냉엄한 동북아 국제질서에서 한국이 역할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운전자’보다는 ‘촉진자’ 역할이 더 현실에 부합한다고 판단된다.


<홍기준 |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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