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중의 ‘화웨이’ 한국 압박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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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미·중의 ‘화웨이’ 한국 압박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6. 7.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협력하는 국내 기업을 향해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라”고 했다. 화웨이에 대한 집중 견제에 나선 미국이 한국의 협력기업들을 직접 압박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5일 주한 미 대사관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단기적 비용 절감은 솔깃할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를 선택하면 장기적으로 리스크와 비용부담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공사, 화웨이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이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중국 외교부 입장이 보도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중국이 한국 기자들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자 미국이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맞대응한 셈이다. 두 나라의 한국 압박은 매우 부적절하지만 미·중 갈등이 한국을 직격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자칫 ‘제2의 사드사태’가 재연되지 않을지 우려가 크다.  


미국은 지난달 27일 동맹국에 화웨이 제재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고, 한국 기업에도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가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고, KT와 SK텔레콤 등은 유선망에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제재에 동참할 경우 이들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특히 LG유플러스는 LTE부터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서비스 중단을 하지 않는 이상 화웨이 제품을 퇴출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장기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대규모 경제보복에 나선 2년 전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미·중 양측의 압박이 노골화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전체 수출의 24% 정도를 중국에 의존할 정도로 경제의 중국의존도가 크지만, 그 못지않은 미국과의 동맹·교역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나 기업이 어느 한쪽에 서는 모습을 보이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원칙을 분명하게 밝히고, 기업들의 자체 판단에 맡길 필요가 있다. 기업들의 선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한국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미국과 중국에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면밀하고 지혜로운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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