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미 정상회담 1년, 미국 ‘전략적 인내’로 돌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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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북·미 정상회담 1년, 미국 ‘전략적 인내’로 돌아갔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6. 1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만남’을 가진 지 12일로 1년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적대관계인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들은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미군 유해송환 등을 담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70년 적대관계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를 담은 합의가 채택되자 국제사회는 열렬히 환영했다.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열린 것에 가슴 뛰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웃으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의 악수는 세계 분쟁 역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 사건이었지만, 싱가포르 회담 1년이 지난 현재 한반도 정세는 기대만큼 빠르게 변화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담긴 합의 중 실제로 진전된 것은 미군 유해송환뿐이었다. 북·미는 후속 협상에서 비핵화를 놓고 옥신각신하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불신은 미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북·미관계 수립, 평화체제 구축 합의는 제쳐 둔 채 비핵화에만 집착했고, 금방 이뤄질 것 같던 종전선언도 무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비핵화가 20% 정도 진행된다면 제재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가 ‘완전한 비핵화 없이 대북 제재 해제는 없다’고 태도가 돌변했다. 부실한 준비 끝에 모호한 합의문을 작성했다가 국내 보수세력들이 반발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북한도 비핵화의 정의와 전체 그림을 만들지 않는 등 치밀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노딜’은 예고된 참사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현 상황을 싱가포르 합의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는 없다. 두 정상이 서로 신뢰하고 있고, 공히 정세관리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기도 쉽지 않다. 북한은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고 하지만 미국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완전한 비핵화’만을 되뇌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따라하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북한의 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이 유지된다면 외교업적으로 충분하다는 안이한 판단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런 식의 태도가 지난 30년간 북·미 협상을 실패로 이끌어왔음을 잊어선 안된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는 서로 속내를 파악했을 것이고, 과거로의 회귀는 안된다는 점도 공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 시일 내에 다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6월 중 남북 정상이 만나 3차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을 놓을 필요가 있다. 6월 하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이전에 4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협상 모멘텀을 살려낼 수 있다. 정부가 양측이 귀 기울일 만한 정교한 중재안을 가다듬어야 할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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