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으로 수학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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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기고]북한으로 수학여행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7. 4.

남북관계를 항구적인 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일부 시·도교육청은 청소년의 북한 수학여행, 남북한 학생교류 사업 추진을 천명하였다. 북한에 대해 가감 없이 알기 위해 북한을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고려할 때, 북한 수학여행은 제대로 추진된다면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냉전의식을 완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통일 전,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는 남북 학생교류에서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던 국가가 분단되면서 적대적 관계에 있던 두 체제에서 자란 청소년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전 서독은 분단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약화되는 청소년 세대의 민족 동질의식이 언젠가 맞이할 통일시대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지식 중심 수업을 넘어 실제 경험을 통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전후로 광범위한 사회문화 교류가 추진되고, 서독인의 동독여행이 가능해지면서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을 비롯한 동·서독 청소년 교류가 추진되었다.

 

서독 청소년의 동독 수학여행은 크게 사전교육, 본수학여행, 사후교육의 과정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수학여행 실시에 앞서 동독 체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전교육이 실시되었다. 사전교육은 동독 관련 자료의 개발·제공 역할을 하였던 전독문제연구소가 담당하였는데 수학여행에 참여하는 학생은 기본적으로 사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사전교육 후 서베를린을 경유한 3~5일 일정의 동독 수학여행이 추진되었다. 수학여행 종료 후에는 소감문 형식의 서면보고서 제출 방식으로 사후지도가 이뤄졌다. 처음 추진될 당시, 매년 2000여명 수준이었던 참가 학생 규모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3만여명으로 늘어나 1980년대 후반까지 33만여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다.

 

추진 초기에 동독 수학여행은 ‘장벽 너머’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서독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여행 인프라가 열악하고, 제한된 지역 방문은 물론 한정된 사람만 접촉이 가능한 수학여행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않았고, 일부의 경우 폐쇄적인 동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독은 동·서독 청소년의 만남, 토론회 등 동·서독 학생 간 직접 접촉을 추진하였지만 동독의 소극적 태도로 이러한 만남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 수학여행은 청소년에게 ‘장벽 너머에 우리와 역사·문화적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직접 체험을 통해 현존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의도했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지 못했음에도, 동독 수학여행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동·서독 청소년 교류 사례의 시사점으로 첫째, 참여 학생이 북한 수학여행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남북 간 큰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현 세대에게 북한 수학여행이 남북의 심화된 이질성을 넘어 평화, 통일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야 한다. 둘째, 남북한 청소년 교류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1회성 만남을 넘어, 남북 학생 간에 우편 등을 통한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양측 청소년 간에 실제적인 유대감이 형성·유지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북한은 우리와 다른 관점에서 교류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체제유지 관점에서 동독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소년 간 직접 만남은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던 동독의 사례를 우리 또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여 사업이 적절한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게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세기가 넘게 지속된 적대 관계와 감정이 일시적인 교류를 통해 단시일 내에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북한 수학여행을 통해, ‘차이가 있지만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우리와 한 핏줄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시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이 그러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구섭 | 전남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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