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불가리아의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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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불가리아의 한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11.

최근 만난 소피아시 문화담당 부시장은 나이가 지긋한 남성인데도 한류에 대해 두루 꿰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부시장은 불가리아에서 다운로드되는 외국 드라마 중 최고 인기는 늘 한국 차지라고 하면서, 소피아에 한국 아이돌 가수가 오면 50유로짜리 티켓을 1만5000장 이상 파는 것은 자신이 보장한다고도 했다. 한류가 성한 다른 나라에서야 별일 아닐지 몰라도, 불가리아는 인구 700만 정도에 근로자 평균 봉급이 월 500달러 조금 넘고, 또 지리적으로 먼 유럽 국가임을 감안할 때 한류에 대한 관심이 범상한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가리아의 한류는 학교교육과 밀접하게 엮여 있어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즉 국립 소피아대학에 한국학과가 있고, 석·박사 과정도 개설되어 있다. 반면 중국학과나 일본학과는 별도의 학과로 독립해 있지 않다. 또 불가리아에서 제일 크고 오래된 공립학교에는 2011년 고등과정에 한국어를 제1 외국어로 공부하는 반이 생겼고, 초등과정에도 2013년 한국어반이 만들어졌다. 지난 3월 양국 수교 25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1~2학년 한국어반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우리 동요를 불렀는데, 눈을 감고 들었으면 한국 아이들이 부르는 줄 알았을 것이다. 불가리아 아이들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은 놀라웠다. 당시 리셉션에 참석한 불가리아 외교장관도 이 학교 출신이다.

그뿐 아니다. 유수한 지방대학 세 군데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되어 있고, 전국에서 세 번째 큰 지방 고등학교에서도 주말 한국어반을 조만간 정식 한국어반으로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럽에 있는 조그만 나라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박사 과정까지 한국어(학)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방에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개인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소피아에 2013년 세종학당이 생겼는데, 수강생이 70명에서 100명으로 늘었다. 한국어만 가르치는 사설학원이 있을 정도다.

불가리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큰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불가리아가 역사적으로 주변국들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받은 데다 가족 간 유대가 강한 문화가 있어서 우리와 감정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 더욱이 휴대폰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와, 한국의 빠른 경제발전에 대한 경이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한류는 문화적 현상일 뿐 아니라, 우리의 기술과 경제력까지 결합된 종합적 현상이다. 서양의 문화적 틀에 우리의 감성과 상상력, 자본과 기술을 조화롭게 섞어 만든 작품이 한류이다.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 마지막 공연에서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있다. _ 연합뉴스


한국 대사로서 불가리아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맙고, 또 이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없지 않다. 세계 속에서 우리가 한류를 계속 키워나갈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나갈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를 갖고 보고 있다. 한류를 뒷받침하는 우리의 경제력과 기술력이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도 조마조마하게 주시하고 있다.

한류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많은 방안이 있겠다. 하지만 한류가 종합적인 문화현상인 만큼, 외국의 이질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활발하게 지속되기를 바란다. 한·불가리아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오는 14일 불가리아 대통령이 방한한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에 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신맹호 | 주불가리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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