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의 부르카를 벗겨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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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누가 누구의 부르카를 벗겨내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7. 30.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부르카 벗겨내기가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벨기에 의회가 지난 4월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착용금지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프랑스 하원이 이달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고, 스페인에서도 조만간 통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부르카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의상 가운데 하나로 눈을 제외한 몸 전체를 검은색으로 가리는 옷이다.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즉각 구금, 체포할 수 있도록 했고, 실제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고 방송에 등장한 여성앵커가 남성들에게 살해되는 사건도 있어, 부르카는 여성탄압의 상징이 되어왔다. 남성들은 누드로 도배된 도색잡지를 보건 말건, 여성의 신체는 오직 그 남편만 볼 수 있다는 ‘기도 안 차는’ 부르카 착용의 논리가 이 전신 베일을 전통적, 종교적 의미로 존중해주기만은 힘든 지점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의 이번 표결에 대해 명쾌하게 긍정할 수 없는 것은 정치권의 의도가 명백히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부르카 착용에 대해, 이것이 여성의 존엄을 해치며, 프랑스 정신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나, 문제는 이 말씀을 하신 화자에게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을 소탕하겠다며 2001년 아프간을 침략하면서 “탈레반으로부터의 아프간 여성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운 상황과도 매우 유사하달까. 탈레반 정권은 진작 붕괴됐는데, 전쟁은 어인 일인지 10년째 끝날 줄 모르고, 한국은 한 달 전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쟁에 또다시 파병했다. 부시가 ‘공포’를 팔아 정치를 했다면 사르코지는 ‘증오’를 팔아 정치를 한다. 2005년 내무부 장관 시절, 아랍계 청년들을 향해 “쓰레기들, 쓸어버리겠다”고 발언해 폭동을 대확산시키고, 그 기회를 인종갈등과 치안불안을 증폭시키는 계기로 활용한 이래, 증오를 부추기는 화끈한 선동정치는 그의 주종목이 되어버렸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600만명.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이 중 부르카를 착용하는 여성은 1900명 선이다. 7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부르카를 두른 여성을 마주친 경험은 아직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정권을 잡은 후, 교통신호만 위반해도 4~5명의 경찰관이 앞뒤로 차를 둘러싼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은 표정으로. 인종분쟁을 증폭시키고 증오를 확대하는 것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하는 사르코지야말로 헝가리 출신 이민자인 그를 편견 없이 대통령으로 뽑아준 프랑스인들의 쿨한 시민정신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중이다.

프랑스의 남녀 임금격차는 26.9%에 달한다. 우리(38%)보단 낫지만, 감히 여성의 존엄성 운운할 정신이 있다면, 1900명의 부르카 착용에 신경쓰기 전에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겪는 심각한 불평등부터 신경썼어야 했다. “진정으로 검은 두건을 두른 자는 사르코지, 부시이며, 가자지구에서 학살을 자행하는 무리”라는 한 프랑스 네티즌의 지적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최근 국내에 급격히 늘어나는 성폭력을 걱정하면서 무심코(?)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들의 다리를 자료화면으로 내보내는 SBS의 행태도, ‘성나라당’ 집권 이후 고삐 풀려가는 사내들의 평정심은 들여다볼 줄 모르면서 지나치게 여성들을 걱정(!)해주는 남근주의적 센스에서 빚어진 사고다. 옷을 벗건, 껴입건, 좀 놔두시죠. 상식적인 평등과 자유가 사회에 작동한다면, 여성들도 댁들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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