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의 ‘시’ 꽃잎처럼 떠다니는 시체가 일깨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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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이창동의 ‘시’ 꽃잎처럼 떠다니는 시체가 일깨우는 것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8. 27.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지난 수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개봉되었다. 일간 르몽드는 전면에 걸쳐 <시>에 대한 평과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일간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도 뜨거운 찬사를 곁들이며 칸영화제 기간 동안 열렬한 호응을 받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에는 마치 끓고 있는 수프와 같이 놀라운 한국 사회의 에너지가 넘친다.” 피가로가 <시>에 대해 평한 것처럼, 세계영화계가 한국 영화에 거는 기대 속에는 쓰라리고 거칠면서도 그런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도전적 힘에 대한 끈끈한 응시가 들어있다. 이창동은 이러한 세계영화계의 기대를 한 번도 저버리지 않는 저력있는 영화인임에 분명하다.



르몽드는 이창동과의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한국에선 0점 받은 <시>’로 뽑았다. 칸영화제에서는 시나리오상을 거머쥔 이 영화가,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작지원 사업 심사에서 ‘0점’을 받았고, 결국 그 어떤 지원도 정부 측으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상황과 동떨어져 있는 그들에게도 놀라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을 터. 어떻게 이러한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언론들은 전 정부의 장관에 대한 현 정부의 보복으로 해석했다고 이창동은 조심스럽게 밝혔다.

사람들은 흔히 유인촌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를 대표한다면, 이창동이 노무현 정부의 문화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머릿속에 대치시키곤 한다. 그러나 그는 단 1년간 문화부를 이끌었다. 네이버 인물정보를 보면, 이창동은 자신의 경력에 문화부 장관 재임 사실을 적고 있지 않다. 본인의 의지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왜 그토록 짧은 기간만 장관직을 수행했는지 묻는 기자에게 이창동은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축소시키려는 미국의 압력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수용하려 하였고, 여기에 대해 나는 거부의사를 밝혔다”고 답했다. 자신의 반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걸림돌이 되자 장관직을 떠났다는 것이다. 당시 이창동은 자신의 사직 이유에 대해 함구했다. 문화부를 떠나기 직전, 이창동은 1년간 장관직에 머물면서 전국의 거의 모든 문화예술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 함께 만들어낸 문화부 최초의 백년대계라 할 만한 ‘창의한국’ ‘새 예술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창동은 “꿈만 꿀 수 있더라도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답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다. 그의 뒤를 이은 정동채, 김명곤, 김종민 장관 시절 이 곱디고운 꿈들은 철저하게 폐기되었다.

유인촌 장관은 문화계 전역에서 전 정부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새 문화부 장관의 임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떠났다. 그 뒤를 이어, 17년간 17번의 부동산 거래를 하며 살아온 신재민 문화부 장관 후보자에게 유산된 꿈을 들여다봐줄 것을 희망하는 건 멋쩍은 일이다.

“이창동은 강물 위에 떨어진 꽃잎이 아니라 하나의 시체로, 그러나 분명 꽃처럼 떠다니는 시체로 우리를 맞이한다”로 시작되는 리베라시옹의 평은 “여주인공 미자는 세상을 보려 하고, 느끼려 애쓰지만, 그녀는 이미 그 안에 있다. 그러나 사과는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로 끝을 맺는다.

유산된 꿈, 꽃처럼 떠다니는 시체는 그러나, 이렇게 응축되어 있다가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언어로 살아나 우리에게 강렬한 동시대인의 무뎌진 감각을 되살린다. 문득, 그 17년 동안 신재민 후보자는 몇 편의 영화를 보았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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