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를 잡아들이는 잔인한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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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집시를 잡아들이는 잔인한 8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8. 13.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8월에도 당신 곁에 있어줄 가장 충실한 파리지앵.” ‘파리지앵’이라는 일간지가 8월에 내세우는 광고 카피다. 8월 파리에는 카페에서 같이 수다를 떨어줄 이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빵집도, 공연장도 문을 닫고 대입 수험생도, 공무원도, 심지어는 방송사도 논다. 재방송으로 뒤범벅된 따분한 TV를 감수해야 하는 게 프랑스의 8월이다. 법정유급휴가가 5주인 데다, 전 세계에서 휴가 활용도가 가장 높은(89%)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휴식할 권리를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친다. 한번은 직원과 약속을 잡고 은행에 갔는데 10분 늦었다. 다행히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오전 11시40분. 당연히 상담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직원 앞에 앉았는데 “미안하지만, 당신은 늦게 왔고, 나는 원래 11시45분에 식사를 하러 가기 때문에 당신과 오늘 상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상담시간이 적어도 10분은 걸릴 테고, 당신 때문에 내 5분을 빼앗길 수는 없지 않으냐”는 말을 웃으며 차분히 하는 여직원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자신의 권리는 저런 식으로 사수하는 거였니!! 뒤통수를 한 대 퍽 맞고, 우리나라 같으면 ‘황당 은행원’으로 신문에 날 일이라 생각한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8월에는 별 사건이 없다. 정치인, 노조나 시민단체도 같이 놀아주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든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더운 여름날, 이 나라 정서상 결코 쉽지 않은 부지런을 떨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임신한 여인을 경찰이 질질 끌고가는 동영상은 그렇게 해서, 프랑스의 새로운 국가이미지로 떠올랐다. 집시 추방계획이 발표된 지 9일 만에 강제철거가 집행된 것이다. 강가에 캠프를 치고 집단거주하던 집시들이 자다가 봉변을 당했고, 소식을 듣고 몰려온 인권·사회단체 사람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마찰이 일기도 했지만, 상황은 반나절 만에 종료됐다.

집시는 인도 북서부에서부터 유럽 전체를 유랑하며 사는 민족이다. 그들에겐 국적도, 정부도 없다. 어느 민족에나 있는 종교나 지도자, 그들을 연대시키는 정치적 신념도 없다. 오직 유랑할 자유를 빼앗는 것만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 뿐. 유럽 땅에 지금 같은 국경이 선명하게 그어지기 전부터 자유롭게 유랑해온 그들에게, 불법체류자의 딱지를 붙이며 “치안불안”을 들먹이는 프랑스 정부야말로 바람을 가르는 새들을 향해 그물망을 치고 잡겠다 덤벼드는 꼴이다.



일요일마다 열리는 바스티유 장에 가면, 언제나 집시들을 만날 수 있다. 집시소녀들은 봄이 막 움트기 시작하면 라일락을 다발로 묶어서 판다. 이들이 파는 라일락은 언제나 내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향기로운 신호였다. 집시들은 어느 나라에 가서나 자신들의 음악과 춤을 통해 그 나라의 예술을 풍요롭게 재탄생시킨 민족이기도 하다. 스페인의 플라멩코, 헝가리안 랩소디로 대표되는 음울하면서도 광적인 헝가리음악,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나오는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의 창조는 집시들이 흩뿌려 놓은 문화적 유산이다. 인간의 자유로운 삶은 언제나 예술이라는 유희를 동반한다는 걸 그들의 자취가 말해준다.

집시들의 언어에는 의무와 소유를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소유만이 존재를 입증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왕성한 생존이야말로 우파 정권들이 경계해야 할 위험한 집단일지도 모른다. 소유하기보다 강렬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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