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닥친 북한의 핵무기 전력화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눈앞에 닥친 북한의 핵무기 전력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10. 6.

북한이 올해에만 2차례의 핵실험과 20회가 넘는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수십년간 매달려온 ‘핵무력 체계 완성’의 끝이 서서히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기회를 활용해 핵무장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를 넘으려 할 것이다. 적어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할 때까지는 북한의 핵 폭주를 막을 현실적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박근혜 정부도 그토록 기다려왔던 북한 정권의 붕괴보다 핵무기와 투발수단을 모두 갖춘 ‘핵무장국 북한’의 출현을 먼저 보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전력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정상적인 정부라면 무엇보다 먼저 군사적 충돌을 막는 일에 매달릴 것이다. 남북은 현재 모든 소통 채널이 끊긴 상태에서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고 있다. 사소하고 우발적인 충돌이 연쇄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규모 교전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제공을 재확인하며 선제타격 옵션을 테이블에서 치우지 않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다. 핵과 핵이 부딪치는 상황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전쟁 방지를 위한 군사적 소통 채널과 통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조이는 일도 중요하다. 북한의 최종적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 여부는 제재와 직결된 문제다. 핵을 갖고도 제재를 받지 않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이 곧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는 것이며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이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제재를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경각심을 갖게 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장 북한을 아프게 하는 제재가 아니더라도 촘촘하게 빈틈을 막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접근법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협상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제재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좌우 한 짝씩 갖춰야 비로소 한 켤레의 신발이 되는 것처럼 제재와 협상은 함께 가야만 쓸모가 있다. 협상이 병행되지 않으면 제재의 정당성도 높이기 어렵다. 

 

군사적 충돌 방지 체제를 만들고, 제재를 넓고 촘촘하게 확대하고,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는 이런 조치들은 사실 새로운 것도 획기적인 것도 아니다. 북한 핵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던 방안이다. 지금 전 세계 전문가들이 내놓는 모든 북핵 해법 제언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한국 정부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탈북을 권유하면서 북한 정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고 외교부 장관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충돌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출구를 열어놓지 않고 제재와 압박에 매달리는 것은 협상 재개가 아닌 북한 체제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통일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이 말은 “북한 문제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북한을 붕괴시켜 북핵·인권 등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려는 것은 망상이다.

 

북한과의 협상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험난하고 까마득하게 먼 길을 한 발자국씩 옮기는 작업이다. 입만 열면 ‘무자비한 타격’ ‘잿더미’ 운운하는 새파랗게 젊은 독재자와 대화하는 것이 역겹다고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엄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 체제 붕괴는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전쟁은 공멸의 길이다.

 

‘악마와의 식사를 위해 긴 숟가락을 준비하라’는 영국 격언이 있다. 때로는 불가피하게 악마와도 마주 앉아 대화를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의미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상대가 김정은이어서 대화를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