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시장 날려버린 메드베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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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시장 날려버린 메드베데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9. 29.

1.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모스크바 시장을 전격 해임했습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8일 중국 방문 중에 “나의 신뢰를 잃었다”면서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전격 해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메드베데프와 루쉬코프의 갈등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특히 지난달부터 사이가 부쩍 멀어졌습니다. 영자지 모스크바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지난달 루쉬코프가 고속도로 건설 문제를 놓고 메드베데프와 상반되는 입장을 한 일간지에 기고하면서 갈등이 노골화됐다고 합니다.

2. 루쉬코프 시장은 어떤 인물인가요?

이 루쉬코프라는 사람은 18년 동안 모스크바 시장을 지내면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러온 사람입니다. 집권 러시아연합당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죠. 옛소련의 기술관료 출신으로,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이 1987년 공산당 모스크바 지부장으로 있으면서 이 사람을 발탁했습니다.
루쉬코프의 부인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옐레나 바투리나라는 여성으로 러시아의 여걸, 철의 여인, 크렘린의 돈줄로 불립니다. 인테코라는 대형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억만장자인데요. 포브스지 집계에 따르면 재산이 29억 달러(약 33조원)에 이릅니다.
루쉬코프는 1992년 옐친에 의해 모스크바 시장으로 임명됐는데, 거기에도 바투리나의 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요. 아내는 돈으로 남편을 밀어주고, 남편은 권력으로 아내 쪽에 토건사업을 몰아주는 관계랄까요.


 루쉬코프

3. 루쉬코프가 재직하던 시절 공과에 대해선 논란이 많았다는데요.

루쉬코프는 근 20년간 시장으로 있으면서 모스크바를 ‘토건공화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프라가 확충되고 모스크바는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지만 부동산 투기바람과 엄청난 인플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새 건물들과 마천루를 세우면서, 로시야 호텔 등 유서깊은 소비에트 시절의 랜드마크들을 없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루쉬코프의 지지율은 줄곧 70~80%를 유지해왔습니다만 화려한 생활에 대한 비난과 부패 의혹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4. 그런데 쫓겨났으니 루쉬코프의 반발이 거셀 듯한데요.

루쉬코프는 공식 성명을 내지는 않았지만 더뉴타임스 매거진에 보낸 서한에서 “2008년에 모스크바 지사선거를 독립적으로 치르게 해달라 요구한 것, 그리고 최근 킴키 고속도로 건에서 반대편에 선 것에 대한 보복조치”라 주장했다고 합니다. 루쉬코프의 임기는 내년 7월 만료될 예정이었습니다.
루쉬코프는 반발의 표시로, 스스로 창당에 관여했던 집권 러시아연합에서도 탈퇴를 했습니다. 루쉬코프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인 이오시프 코브존 국가두마(하원) 부의장도 “크렘린은 모스크바의 목을 자른 이유를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5. 푸틴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대통령을 지내는 8년 동안 루쉬코프를 계속 연임시키며 힘을 실어줬던 푸틴도 이번에는 편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푸틴은 “루쉬코프는 모스크바를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이 대통령에게 종속되어야지, 그 반대는 안 된다”고 못박았습니다. 시장 인사는 엄연히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겁니다.
최근 푸틴과 메드베데프 간에 모종의 정치협상이 벌어졌고, 메드베데프는 루쉬코프를 제거하도록 푸틴에게 압박을 가해 결국 양보를 얻어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각에선 “루쉬코프가 푸틴의 신임을 과신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메드베데프 /리아노보스티

6. 그럼 일단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승리로 봐도 되는 걸까요?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러시아 블로거들이나 정치분석가들 사이에선 “이제야 우리에게 대통령이 생겼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2008년 그루지야 전쟁 때 메드베데프는 “내가 군 투입을 최종 결정했다”고 수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루지야조차 “푸틴의 결정일 것”이라며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처음으로 메드베데프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자신만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데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7. 근래 메드베데프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푸틴을 조금씩 밀어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데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협상을 재개한 것, 푸틴의 대서방 강경자세로 마찰을 빚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갈등을 봉합한 것, 유엔에서 이란 제재안을 지지하며 미국 편에 선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메드베데프가 푸틴을 ‘눌렀다’고 할 수는 없지요.
뉴욕타임스는 “모스크바 시장을 잘랐다고 해서 ‘누가 러시아를 다스리는가’라는 문제가 풀린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메드베데프가 모스크바 시장을 자르는 데에 여전히 푸틴의 허가가 필요했고, 따라서 아직도 “보스는 푸틴”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어쨌든 메드베데프가 대선을 앞두고 한 걸음 내딛는데 성공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구정은 기자 (http://ttalgi21.khan.kr/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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