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깊은 안도, 불투명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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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파리통신]깊은 안도, 불투명한 희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5. 8.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지난 일요일 저녁 8시. 전광판에 새로운 엘리제궁의 주인 얼굴이 떠오르자 다수의 프랑스인들은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여론조사들이 보증해 준 승리였지만, 18%의 극우세력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아찔할 정도의 박빙이었다. 그러나 사회당의 지난 대선주자이자 올랑드의 전 부인인 세골렌 루아얄의 말을 빌리자면 “사르코지 캠프가 구사한 그 모든 공포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룬 승리”이므로, 명백하고 위대한 좌파 전체의 승리라고 봐도 무방했다.

승리의 이날, 많은 사람들은 유난히 ‘상처받고 찢기고 짓밟혔던’ 지난 5년을 떠올렸다. 자신의 악수를 거부하던 농부에게 “불쌍한 멍청아, 꺼져버려”라고 내지르던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다수의 국민들을 그 농민처럼 취급했다. 일부 부자들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국고의 열쇠를 마음껏 사용하고, 그들과 협력해 금융자본주의의 독재시대를 활짝 열면서 빚어진 위기를, 저항을 무력화하고 ‘긴축’을 내세워 교육, 의료 등의 공공영역을 무자비하게 축소하는 호재로 활용했다.

그 어떤 저항의 목소리도 자신의 뜻과 부합하지 않으면 내던져버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사르코지가 지난 5년간 남긴 가장 큰 상처는 프랑스 사회를 구축하는 기본 가치들을 짓밟은 일일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억압과 불평등, 차별로 바꾸어 놓으면서 프랑스 사회에 비상식적 극우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불씨를 제공하고, 바람을 불어넣은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1789년 이후,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의지하며, 공기처럼 누리던 이 가치가 너덜너덜 훼손된 낯선 프랑스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날 저녁, 바스티유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사르코지에 의해 훼손된 프랑스적 가치를 회복하고, 그 위에 새로 시작되는 역사 속에서 각자의 앙가주망(사회참여)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이제 프랑스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밤, 우리는 프랑스에 최상의 이미지를 남깁시다. 빛나는 프랑스, 증오를 품지 않는 프랑스, 민주적인 프랑스, 기쁨 넘치는 프랑스, 열린 프랑스,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프랑스. 우리는 프랑스의 위대함에 대해서만 생각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며 이상입니다.” 낙선을 인정하는 사르코지의 마지막 연설이었다.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당선자를 축하하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프랑스 정치계의 전통이었다 해도 사르코지의 무대를 떠나는 뒷모습은, 이날까지 그가 보여준 것 중 최고의 모습이었다.

마침 프랑스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좌파정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연정을 구성할 권한이 좌파에게 넘어갔다. 이 유럽발 좌클릭 신호가 전 세계 증시를 술렁이게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로써 사르코지와 독일의 메르켈 투톱이 주도하던 좋은 말로 하면 긴축, 적나라하게 말하면 울트라 신자유주의의 유럽은 새 전기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올랑드가 엘리제궁에 들어서는(5·15) 다음날, 그는 메르켈을 만나야 하고, 사르코지-메르켈의 긴축협약을 다시 논의한다. 금융권 제재에 관한 첫 공약을 실천하기까지, 무수한 금융권의 협박과 회유의 목소리를 접할 것이다. 불투명하기만 한 오늘의 희망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기 위해, 거리에선 이 말랑말랑한 새로운 권력자에게 그의 가야할 길을 또렷이 각인시키기 위한 새로운 투쟁이 펼쳐질 것이다. 한 달 뒤 총선은 여러 갈림길에서 올랑드가 뜬 첫 삽에 대한 평가이자, 사회당 재집권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발효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사회당이라는 미심쩍은 무늬에 피와 살이 들어차게 하는 일은 그러므로, 여전히 유권자, 시민의 몫으로 남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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