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전직 포르노배우의 국회의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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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파리통신]전직 포르노배우의 국회의원 도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6. 5.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셀린 바라, 33세. 흑인들은 아시아인들을, 아랍인들은 모리셔스인을 경멸하고 서로 무시하는 거친 파리의 외곽도시에서 파출부를 하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풍찬노숙을 하며 지내다가,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 창구에서 일하던 시절, 반나절 일하면 230유로(약 32만원)를 벌 수 있다기에 포르노 배우가 된다. 그녀의 나이 스무살이었다.

별로 두렵지 않았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면 되니까. 착취와 사기에 가까운 포르노 영화 제작자들을 만나면,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을 인터넷에 무료로 올리기도 했다. 이런 사기꾼들이 이걸로 돈을 벌어선 안된다는 생각에.

한 포르노 영화 제작자를 향해 남편 시릴이 총을 겨누게 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둘은 숨어 다녔다. 결국 남편의 행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그녀는 1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끔찍한 구타와 비인간적인 지옥을 상상했으나, 오히려 그 안에서 복역자들 간의 단단한 연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땅바닥보다 더 아래로 추락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랬다. 거침없이 자기 앞에 주어지는 세상을 살아냈고, 바닥에 내쳐지면 거기서 돌멩이 하나씩을 움켜쥐며 다시 일어서며, 거기서 얻는 경험들을 통해 만들어낸 자신의 철학으로 조금씩 무장했다.

 

프랑스의 한 유권자가 대선 1차 투표 용지를 받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남편과 함께, 구글에서 ‘가장 싼 지역’을 쳐서 찾아낸 곳이 피레네 산 근처, 지금 사는 마을 아리예즈였다. 프랑스에서 집값이 가장 싼 이 동네에선, 학교도, 우체국도, 병원도 빨리 문을 닫는다. 인근 도시와 이곳을 연결하는 어떤 대중교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빈민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만이 활기를 띤다.

50여년간 사회당이 집권하던 이 마을에서 이번 대선엔 극우세력이 표를 얻었다. 독일계 아버지, 모리셔스계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그녀. 극우정당 FN(국민전선)은 오늘의 모든 불행을 외국인 탓으로 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지역사회에서 아무 변화도 꾀하지 않는 사회당. 엉뚱한 곳에 책임을 전가하는 FN. 그 사이에서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삶을 바꾸기 위해, 우선 이러한 삶을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공산당과 반자본주의신당을 찾아가,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거절당했다. 결론은 당을 만드는 것. MAL(Mouvement antitheiste Libertin) 자유주의 반신(反神)론 운동이라는 당은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현재 당원은 딱 세 명. 무신론이라는 단어는 신앙과 종교를 배격하는 자들이 취하는 너무도 역겨운 타협이라 여길 만큼, 종교와 신앙은 철저하게 배격해야 할 사회적 아편임을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철저히 경험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자유주의는 방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제의 몰락을 가져왔던 계몽주의의 자유를 상징한단다. 그녀는 스스로를 진정한 극좌파로 규정한다. 더 많은 이윤 추구를 향해 너도나도 질주하는 현재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그 대신에 부를 나누고 인간을 존중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이 당의 목표다. 그리고 종교가 없는 세상, 성적인 자유가 충만한 세상, 인간이 차별없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하루 아침에 계파의 단합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자, 국회의원이 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서민 앞에서 호령하며 군림하는 자들보다, 노숙도 해보고, 포르노 배우, 파출부도 해보면서, 그 모든 세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아픈자들이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 자신의 불행에 주저앉지 않고, 불행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밀어넣은 원인들을 지목하면서 함께 그것을 제거해 나갈 것을 주장하는 이 씩씩한 사람. 국민의 대표로 조금도 손색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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