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선거철만 되면 일어나는 일들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목수정의 파리통신]선거철만 되면 일어나는 일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3. 27.

목수정 작가·파리 거주

선거철만 되면 휴전선 부근이 뜨거워지고, 희생자가 생겨나고, 정국은 경색된다. 희생자가 있으니 가해자도 분명히 있을 터. 그 가해자를 향한 응징의 목소리가 우파의 상승세를 돕는 방향으로 승화되고 변화를 지향하는 마음을 위축시킨다. 음모인지 우연인지, 선거가 임박하면 발생하곤 하는 총격사건의 전설은 프랑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재선을 위한 출사표를 던진 지 한 달. 그러나 사르코지의 지지율은 여전히 1위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때. 마침 남부 도시 툴루즈에서 무차별 총격사건이 발생한다. 11일, 15일, 19일, 이렇게 정확히 사흘 간격으로 스쿠터를 탄 총격범이 모두 7명을 사살했다. 사살당한 첫 세사람은 아랍인 출신의 군인. 나머지 네 사람은 세 명의 유태인 어린이와 한 명의 유태인 교사다. 그리고 한 사람이 더 총격을 받았지만, 부상만 입었다. 그는 프랑스 해외령 카리브해 출신이다.

희생자들만 놓고 보면, 범인의 살해 동기를 추측하기 힘들다. 사회에 불만을 품은 정신이상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범행 마지막 날 사살된 네 명의 희생자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범행 동기를 ‘유태인 혐오’로 신속히 낙인찍고 만다. 범인의 이름은 모하메드 메라. 알제리 출신 이민자다. 바로 이 순간부터, 사건은 이슬람 세력의 유태인 테러로 규정되며,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전해지고, 프랑스 신문들은 프랑스 전체가 애도의 물결에 잠겼다며 이 슬픈 소식을 대서특필한다.

사르코지는 즉각 이 “국가적 비극”에 애도를 표하고, 초·중·고교에 1분간의 추모시간을 갖도록 명한다. 이로써, 여섯살짜리 꼬마들도 아이들을 죽이는 툴루즈의 ‘무서운 아저씨’ 이야기를 입에 올리게 된다. 사르코지를 비롯한 프랑수아 올랑드와 에바 졸리, 마린 르펜 등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은 유태인 교회에서 실시된 유태인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I 출처:경향DB

사르코지는 희생된 유태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묻히러 떠나는 길을 공항까지 동행했다. 나머지 희생자는? 알 바 아닌가보다. 프랑스에서 뜨거운 이름은 “북”이 아니라 “이슬람”이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 무장세력은 서구사회를 관통하는 ‘공포’의 고정된 공식이 되었다. 그 전형적인 공포를 가장 효과적으로 발효시키기 위해선, 그들의 오래된 적, 유태인의 ‘희생’을 부각하는 것이 최선인 탓이다.

프랑스 경찰당국은 그가 알카에다와 연계된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 무자헤딘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수차례 다녀왔으며, 무장훈련까지 받았다고 전하면서, 국제 테러망의 조직적 연계를 암시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정부는 즉각 그가 입국한 흔적이 전혀 없다면서, 프랑스 당국의 발표를 부인했다.

이 대목에서 뭔가 프랑스 정부의 변명이 있어줘야 할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간다. 결국 지난 21일 200여명의 무장군인이 단 한 명의 살해용의자를 생포하지 못하고, 자신의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게 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된다. 배후도, 명확한 살해 동기도 뚜렷이 밝히지 못한 채.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강렬한 여운을 남겼고, 뚜렷한 효과를 사르코지에게 선사한다. 불안이 조장되고 나면, 영혼이 잠식되는 법. 사람들은 위험을 동반할지도 모르는 더 많은 행복을 내려놓고, 안전을 선택한다.

한 고교 교사는 죽은 유태인 아이들을 위해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 대신, 사르코지의 음모에 의해 희생된 모하메드 메라를 위해 추모하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하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선거철만 되면 왜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는 건지. 왜 권력은 꼭 이렇게 피를 먹고 자라야만 하는 건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