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더 넓은 평등을 위한 게이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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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파리통신]더 넓은 평등을 위한 게이 프라이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7. 3.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지난주 토요일, 50만명이 참여한 파리의 게이 프라이드(Gay Pride) 행렬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갔다. 무지개 빛의 화려하고 흥겨운 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한 뼘 더 가까워진 평등과 인권으로 향한 길이 남겨졌다.

게이 프라이드. 말 그대로 동성애자들이 당당하게 자긍심을 드러내며 화려한 모습으로 분장한 채, 억압되었던 감정과 표현욕을 거리에 눈부시게 쏟아내는 퍼레이드다. 파리의 게이 프라이드는 해를 거듭할수록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상상력이 드러나는 친근한 퍼레이드로 자리 잡았다. 이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이 꿈같은 축제를 기다리고, 솜사탕을 들고 구름 위를 걷는 심정이 되어 퍼레이드의 삼매경에 빠져든다.

게이 프라이드의 기원은 1969년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의 한 게이바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게이들을 집단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 이 사건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이날의 야만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해부터 뉴욕의 게이 활동가들이 거리행진을 시작한 것이 게이 프라이드의 시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이 프라이드 행진’ 도중 한 남자가 동거녀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여자의 배에 쓰인 ‘퀴어스폰’은 LGBT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속어다. ㅣ 출처:경향DB

파리의 게이 단체는 1971년 최초로 조심스럽게 메이데이 행사에 한 그룹을 지어 노조들과 함께 행진하다가 1977년부터 게이들만의 독립적인 날을 택하여 걷기 시작했다. 이젠 역으로 온갖 정당, 노조, 사회단체들이 동성애자들과 어깨를 걸고 이 게이 퍼레이드에 들어와 함께 걷는다. 그렇게 해서 불어난 참가자가 50만. 장애인 단체, 환경단체, 이주노동자 단체 등등. 성적인 차별뿐 아니라 이러저러한 이유로 소외당하고 차별에 직면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화합의 축제를 벌인다.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를 약속한 최초의 프랑스 정부가 들어선 이후 펼쳐진 이날 행사의 슬로건은 “평등, 더 기다릴 수 없다”였다. 약속에 대한 조속한 실천을 요구한 것.

마침 가정부 장관 도미니크 메르티노티가 2013년 법안 통과를 약속하면서 이날의 행진은 강렬한 기대와 흥분에 들썩였다. 정부가 준비하는 법안은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결혼하고 입양할 수 있는 권리’를 담고있다. 누군가를 차별하지도 우대하지도 않으면, 문제는 이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것을. 프랑스는 1999년에 이미 결혼이 아닌 양성 혹은 동성간의 합법적인 결합을 인정하는 시민연대결합(Pacs)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더 넓은 평등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게이 프라이드는 모든 터부를 죄다 길거리에 쏟아내고 함께 깔깔 웃어주는 프랑스식의 한바탕 굿이다. 세상의 모든 억압과 차별을 비웃어 주면서, 정화시키고 승화되는 거대한 굿판이 제법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63%에 달하는 프랑스인들의 동성애결혼 지지율이 그것을 입증한다. 동성애자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몇가지 법적 권리를 더 누리는 것에 있지 않다. 법적 불평등이 제거되면서 결국 일상에서 이성애자들과의 평등을 누리고 싶은 것. 이들의 노력을 통해 확보되는 평등은 광대한 도미노 효과를 예고한다. 그들을 통해 더 많은 평등이 이뤄질 것은 분명하다. 게이로서 ‘프라이드’를 느껴도 좋은 분명한 이유다.

세상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나라도 7개국이나 되고, 동성애가 불법인 나라는 100개국에 달한다. 덴마크는 1989년 세계 최초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했지만, 중국은 2001년에 이르러서야 동성애를 정신질환의 목록에서 지운다. 지구는 둥글고 세계는 ‘made in china’로 하나 되는 듯하지만 인권이 삶에 스며든 상태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지구속에 중세에서 21세기까지 광대한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인권 감수성.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측정하는 민감한 바로미터다. 우린 어디쯤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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