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노동에 대한 찬양이냐 여가의 숭고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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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파리통신]노동에 대한 찬양이냐 여가의 숭고함이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8. 8.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요즘 지하철을 타면 불어보다 영어와 스페인어, 한국어, 일본어가 더 많이 들린다. 동네 빵집들은 문을 닫고, 근근이 먹고 사는 것 같은 중국식당, 밤낮없이 일하는 한국식품점들까지도 3~4주씩 쉰다고 내건 휴가안내표지를 보면, 정말 8월의 파리는 관광객들의 손에 맡겨진 도시 같다. 그러나 정작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서로 만들어 내고, 속고 있는 가공의 이미지다. 프랑스는 ‘한때’ 여름이면 모두가 바캉스를 떠나는 나라였으나, 올해 휴가를 떠나지 못한 프랑스인들은 46%나 된다. 거의 두 명 중 한 명꼴.


1936년, 프랑스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었던 인민전선 정부가 여가의 권리를 천명하며 연 2주간의 유급휴가를 공식화한 이후, 1982년부터는 연 5주간의 유급휴가가 인정되는 프랑스. 일상을 내려놓고,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권리와 필요에 대해서는 그 어느 사회보다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한 이 나라에서도, 3년 전부터,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관광부장관 실비 피넬은 2009년에 78%였던 바캉스 인구는 2010년 73%, 지난해엔 69%로 줄었다고 전하며, 급격히 초래된 여가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모두에게 바캉스를’이라는 5개년 계획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작은 마을 릴 쉬르 라 소르그의 수로와 집들, 꽃이 어우러진 풍경 (출처: 경향DB)


 왜 우린 휴가를 떠나야하는가? 왜 정부가 국민의 휴가권까지 나서서 챙겨야 하는가? 국립사회연구소 소장 장 비아르는 이렇게 답한다. “모든 사회는 생활의 리듬을 변화시켜줄 의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이슬람세계에는 라마단이 있고 일본인들에게는 벚꽃축제가 있다. 현대 유럽 사회에서, 바캉스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휴가는 일상과의 단절이다. 이러한 단절을 겪고, 일상에서 보지 못하는 완전히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풍경들을 누리고 난 후 사람들은 더욱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다. 생각을 환기시키지 못한 채, 일상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일은 효율적일 수 없다. 사회는 점점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자유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지금처럼 이동성이 강화된 사회에서, 떠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건 일종의 장애다. 바다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사회적 장애인이 되어 버린다.”


그에 따르면, 휴가인구가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은 우선 경제 위기에 따른 것이지만, 더불어 감히 휴가에 대한 생각 자체를 품지 못하는, 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업이 만연한 시절, 별장 1주일 렌트비가 한달 최저임금에 육박하는 현실의 압박을 정신적으로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더 일하고 더 벌자”고 외쳤던 5년간의 사르코지 하에서 여가에 대한 욕망은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인민구호’라는 협회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노동자 가정들이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해왔고, 지난해에 17만명의 빈곤층이 이 기관의 지원으로 1주일간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현 정부는 휴가의 사회적 권리를 강화하여, 휴가 가는 사람들의 비율을 80%까지, 특히 모든 어린이, 청소년들이 소득에 구애없이 휴가를 떠나게 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 사위로 유명한 폴 라파르그는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기이한 환몽에 사로잡혀 있다. 노동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격렬한 열정이 바로 이러한 환상의 한가운데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일에 중독돼 있고, 일부 유한계급은 강요된 여가에 시달리고 있다”고 일찍이 1883년에 지적한 바 있다. ‘노동에 대한 찬양’을 잠시 내려놓고, ‘여가의 숭고함’에 잠시 머리를 기울여 보는 것. 꽉 짜여진 스케줄에 거대한 백지를 마련해 보는 것. 이제는 우리사회도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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