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향수, 그리고 지속가능한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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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미테랑 향수, 그리고 지속가능한 후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5. 13.
미테랑 향수가 프랑스에 퍼져가고 있다. 이러한 정황이 포착되기 시작한 건 이미 여러달 전. 미테랑 당선, 동시에 사회당 승리의 그날인 5월10일을 즈음해서 미테랑 향수의 바람은 거대한 열망처럼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다. 언론들은 30년을 맞이한 좌파 승리의 그날과 미테랑 노스탤지어의 바람을 진단하고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81년의 승리는 오랜 열망 끝에 비로소 거머쥔 좌파 전체의 것이었다. 당시 혁명과 진보의 상징 바스티유 광장은 밤새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기에, 불과 2년 만에 좌파진영 전체의 희망을 하나 둘 저버렸던 미테랑에 대한 지지층의 주된 심정은 ‘배반’이었다. 당시 총리를 맡았던 로랑 파비우스마저, 미테랑을 향했던 그 저주와 비난의 강도를 기억한다면 오늘의 이 미테랑 향수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리둥절할 뿐이라고 평했다. 그에 대한 모순된 오늘의 정서는 물론 사르코지에 기반한다. 정치적 업적과 성과를 떠나서 정확한 불어를 구사하고, 자신이 가진 문화적 안목에 기반하여, 문화를 확대하고자 했던 품위있는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남긴 미테랑은 사르코지와 가장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 향수의 색깔은 정치적이기보단 문화적인 것이 분명하다.

5월10일, 프랑스 전역에선 150여개의 집회와 토론회, 기념행사가 열려 좌파집권 30년을 맞는 이날을 축하했다. 그중 가장 주목받은 행사는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대형 콘서트였다. “어제 바로 여기서, 내일도 역시(Hier ici Demain aussi).” 제목에는 미테랑 혹은 사회당 따위의 단어는 물론 그 어떤 정치적 뉘앙스도 풍기지 않았으나,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가수들을 초대해 승리의 바로 그 자리에서 모두가 기쁨과 열광을 함께 나눔으로써 일년 뒤 같은 승리의 기쁨을 누리자는 다짐만은 분명했다.

60년대 청년이었던 이들은 그들 부모세대로부터 1936~39년의 혁명적 정부, 인민전선(Front Populaire)의 전설을 들으며 자랐고 이후 68의 주역이 되었듯이, 30년 전 사회당의 승리를 경험하지 못한 오늘의 20대들은 그 누구보다 좌파 승리 30주년의 흥분을 즐기고 2012년 또 다른 좌파 승리의 주역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엔 단순한 “승리” 자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개혁에 대한 담보다. 집권 14년 후의 사회당에서 더 이상 좌파의 냄새는 풍기지 않는다. 더구나 현재 가장 유력하게 점쳐지는 내년 대선의 사회당 후보는 IMF의 총재이기도 한 도미니크 스트로트 칸(DSK)으로, 사회당 대권주자 가운데 금융자본주의의 감각을 가장 예민하게 갖고 있고 사회주의와는 가장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를 그 자리에 있도록 추천한 인물이 사르코지라는 사실을 안다면, DSK가 누리는 인기 또한 미디어의 조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크고 노스탤지어는 깊어만 가지만 갈 길은 아득하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 중이지만 프랑스 언론은 물론, 교민사회에서조차 어떤 관심도 표명하지 않는다. 맹렬한 반대시위가 있는 것보단 나을는지 모르지만 이 대통령이 누리는 이 참담한 무관심은 집권여당이 함께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권력탈환이 장밋빛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개혁’을 약속하는 후보가 아니라면 모순된 후회와 향수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바꿔야 하는 건 정권이 아니라 세상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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