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본인들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 사회를 정면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3일자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다. 무라카미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은 물론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도 “누구도 진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일본 사회에 만연한 ‘책임 회피’ 성향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그는 특히 전쟁이 끝난 뒤 “당시 군벌(軍閥)이 나빴을 뿐이지 일왕도 이용당했고, 국민도 모두 속아서 참혹한 비극을 당했다”며 ‘결국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정리한 것이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인 스스로 희생자이며 피해자란 그릇된 인식에 사로잡혀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한국인, 중국인이 화를 낼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주변국과 갈등을 초래하는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아베 신조 정권과 일본 사회가 과거사를 외면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면서 급속한 우경화(右傾化)로 치닫는 데 대해 경종을 울린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을 꾸짖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출처 : 경향DB)
최근 들어 일본 정치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조차 과거사에 대한 왜곡이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한국인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발언을 해 한국 독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바 있다. 반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그동안 줄곧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속죄를 촉구해왔다. 올 7월에는 “헌법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는 인간”이라고 아베 총리를 비난했다.
다 알다시피 무라카미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도 수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오에와 함께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게감을 지닌 일본 작가의 양심과 진정성이 담긴 자성(自省)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가고 반가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일본의 책임의식 부재를 비판하는 무라카미의 발언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년은 일본 종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일본이 침략과 인권 유린의 가해자라는 역사를 부정하는 한 이웃 국가와의 관계 개선은 요원하다. 일본 정부와 사회가 무라카미의 고언을 깊이 경청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 내부에서 이런 양심적인 목소리가 더욱 늘어나 일본 사회를 깨우는 죽비소리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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