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동 평화의 파괴자로 전락한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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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중동 평화의 파괴자로 전락한 미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5. 16.

미국이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시민 최소 58명이 숨지고 2700여명이 부상당했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항의시위를 이스라엘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비무장 민간인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하며 무차별 진압에 나서면서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는 핏빛으로 얼룩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영상을 보면 이스라엘군은 어린이와 노약자가 포함된 무방비 상태의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했고, 저격수가 도망치는 시위자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전쟁범죄나 다름없는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다.

 

국경없는의사회 팔레스타인 현장 책임자 마리 엘리자베스 잉그레스는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무기를 지니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총격을 당하는 장면은 견디기 어렵다”고 현지의 참상을 전했다. 이번 사태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데서 비롯됐다. 미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예루살렘 지위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국제사회도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동성지인 예루살렘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해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12월 이 원칙을 파기했고,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대사관 이전을 강행함으로써 ‘중동의 화약고’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종교와 민족 간 갈등이 난마처럼 얽힌 중동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과거 미국은 중동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미국 자체가 갈등의 핵심 축이 돼버렸다. 중동평화를 위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란 핵합의를 철회한 것은 중동은 물론 서방 국가들 간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이 중동평화의 파괴자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국제사회는 이번 유혈사태로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자제를 촉구했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것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성명 채택까지 무산시켰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지 않도록 이스라엘 정부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미국이 당면한 책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을 무조건 편드는 일방주의적 행태를 버리지 않는 한 중동평화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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