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한·미동맹의 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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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세상읽기]한·미동맹의 관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 2.

한국 외교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 합의 건을 두고 한랭전선이 만들어졌다. 한·일관계가 긴 동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년 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해 사실상 배후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던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때 일이라고는 해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은 당분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운 사람들은 이제 남은 건 한·미동맹 약화뿐이라는 냉소적 반응 일색이다. 중요 정책이 대통령 한 사람의 태도에 결정적으로 좌지우지되었던 상황이 어처구니없기는 해도 실상이 드러난 이상 더는 재발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돌이켜보면 2017년은 사실상 미국과 북한 간 ‘강대강’ 대치가 최고조에 이른 한 해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작년 한 해에만 무려 4차례의 대북 제재 결의(2356·2371·2375·2397호)를 채택했다. 작년 5월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위기를 서둘러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안보불안 지수는 심리적 최고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지난 25일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2397호)를 단호히 배격한다고 발표했다. 안보리가 22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2397호에는 북한이 도발하면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트리거 조항’이 들어있다. 북한은 “추종세력들까지 씨도 없이 박멸하자는 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한결같은 복수의 외침”이라고 겁박했다. 한국과 일본도 핵위협에서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떡하다 한반도가 비트코인 가치보다 불안정한 처지가 됐다.

 

이제 북한 핵보유는 부정할 수 없다. 미국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까지 없다고만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이 북한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비확산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문제에 근본적인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그 어떤 성공적 성과에 상관없이 내파적(內破的) 위험에 다가가는 셈이다. “역사는 한 번은 스스로를 교정할 기회를 준다”는 경구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과 외교국방 참모들은 북핵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상상력의 실타래를 푸는 입구일 수 있다.

 

한·미동맹을 메시아로 여겼던 때가 있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도 없지만 그 불편한 진실을 쉽사리 부인하기도 어렵다. 누군가가 묻는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 무슨 일이 남아있는가. 아픈 질문이다. 그 아픔을 문 대통령이 먼저 느꼈다.

 

작년에 대통령은 “우리에게 (현 위기를)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 낼 힘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비감하게 말했다. 국가를 보위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문 대통령은 강대국 정치 중심의 엄혹한 국제 현실에 개입하려고 할 때 상황은 늘 우리가 지니고 있는 힘보다 큼을 말하고자 했다. 지정학적 운명이다.

 

그 운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반도가 전장(戰場)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예측도 있다. 한·미동맹을 축으로 했던 국가안보 패러다임이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지도자의 외교적 용기를 필요로 하는 수평적, 쌍방적, 호혜적 관계로의 질적 변화는 불가피하다. 속도와 방향이 관건이다.

 

새해에는 기존의 동맹문법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한반도 문제를 숙의했으면 한다. 이는 북핵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동맹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함을 말하는 것이지 동맹의 파기를 주장함이 아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중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전회(轉回)의 시기에 한국 외교국방 주체들의 뼈아픈 각성이 있어야만 관성의 극복도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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