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2018 한국 외교, 유턴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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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2018 한국 외교, 유턴은 가능할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7. 12. 22.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전혀 과도하지 않았던 2017년이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촛불시민혁명이 만들어낸 기적의 기억이 어제인 듯 생생하면서도 이후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만들어낸 두께로 인해 마치 수년이 흘러간 듯한 느낌마저 든다. 주저앉아버렸던 나라는 모든 것이 어려웠고, 또 그래서 모든 것에 희망을 걸게 했다. 역사가 늘 그랬듯이 희망은 시간의 흐름과 반비례하며 작아진다. 소수의 주동자들과 앞잡이들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수많은 공모자들은 겁을 먹었다가, 눈치를 보다가, 다시 뻔뻔해졌다. 반성하지 않고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을 사사로운 복수나 세상물정 모르는 아마추어리즘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전혀 낯설지 않다.

 

한국 외교는 긴 터널에 갇혀 있었다. 지난 10년간 지정학적 저주의 그림자는 걷히기는커녕 짙어질 대로 짙어졌다. 미·중 패권경쟁은 동북아에 다시 진영대결구조를 만들고, 남북관계는 완전히 무너졌다. 신정부는 촛불혁명의 산물이었지만, 외교에 부여하는 프리미엄은 거의 없었다. 역대 어떤 정부보다 더 자주 더 크게 북한의 도발에 시달려야 했으며, 중국의 제재와 일본의 이간질은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환갑을 훨씬 넘긴 한·미동맹은 한국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했지만 사상초유·예측불가의 미국 대통령은 전쟁위기를 고조하며 우리에게 더 큰 시름을 안겼다. 방어적 동맹을 원하는 우리와 공세적 동맹을 가지고 싶어 하는 미국의 인식은 65년의 긴 역사도 무색하게 태평양만큼이나 격차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비전은 시작부터 온통 난관이었다. 사드 조기 배치를 새로운 한국 대통령의 사상검증처럼 거칠게 밀어붙이던 미국의 압력을 수용하면서 우리의 입지는 커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훨씬 더 위축되어버렸다.

 

북한 핵개발로 인해 더 위험해진 한반도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커졌지만 서로의 주판알이 다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미국이 달라졌고, 과거 어떤 행정부보다 신뢰나 리더십은 물론이고, 위선마저 던져버렸다. ‘위기를 생산하고 무기를 판다’는 전형적 군사주의 미국의 민낯을 드러냈다. 트럼프가 부르짖는 미국제일주의는 단순한 국익우선의 정책이 아니라 상대가 적이든 친구든 상관없이 미국이 만족할 때까지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겠다는 선언이다.

 

최근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최초로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SS)은 온통 미국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국과 러시아를 현상수정세력 또는 적대관계로 규정함으로써 냉전적 대결관점을 확실히 했으며, 북한과 이란을 깡패국가로 규정한 것은 부시독트린을 연상케 한다. 국경을 보호하고 이민을 통제하며, 미국의 우월적 힘을 이용해 통상이익을 확실하게 챙기겠다는 것에서는 대외정책을 국내정치에 종속시키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험난한 새해를 예고하는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평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 연기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불법과 합법을 교환할 수 없다는 원칙과 쌍중단의 중국 제안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올림픽이 가진 레버리지를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극한의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북·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상황을 풀 수 있는 유턴의 묘안이 될 수 있다. 사실은 한국 대외정책의 유턴 결심은 지난 10월31일의 한·중 3불 입장 발표와 그에 이은 방중이라고 본다. 대중경사론 또는 굴욕외교라는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외교 운신의 폭을 넓히고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시작일 뿐이다. 한국 외교의 유턴을 가로막는 도전은 이제부터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자신들이 만든 구도를 들이밀 것이고, 미국의 최대 압박노선은 불변이다. 3불 입장은 미국 외교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질 것이며, 따라서 다가올 미국의 저항과 압박은 사드 조기 배치 요구보다 거셀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전략은 한·미·일 동맹을 통한 대중견제 또는 봉쇄이고, 그 핵심엔진이 미사일 방어이며, 미사일 방어의 출발이 사드라는 점은 NSS에서도 재확인했다.

 

북한과 함께 우리 외교력이 발휘되어야 할 우선 대상은 미국이다. 동맹중독증과 더불어 미국이 한반도 긴장고조의 당사자라도 미국의 존재감과 우리의 의존도가 상승해버리는 덫에 걸려있다는 점에서 험난한 앞길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창을 포함한 2018년 상반기는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순간이 될 것이다. 재유턴하지 말고 버텨주기를, 더 나아가 새 길을 개척하기를 촛불혁명 정부에 간곡히 바란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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