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제민의 특파원칼럼]미국은 왜 ‘전작권 재연기’ 요청을 들어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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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제민의 특파원칼럼]미국은 왜 ‘전작권 재연기’ 요청을 들어줬나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0. 29.

한국군이 아직 북한의 위협에 주도적으로 초동 대응을 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 요청을 들어줬다는 박근혜 정부의 설명은 절반의 진실도 보여주지 못한다. 이미 한번 연기해 놓고 또다시 연기해 달라는 한국의 요구에 애초 부정적 반응이 많았던 미국이 왜 기꺼이 응했는가 하는 물음에 동맹국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배려심 덕분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미국 국내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

29일 부임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가 6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나눈 대화가 실마리를 제공해줄지도 모르겠다. 리퍼트는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긴장고조 행위를 어떻게 억지하고 있느냐’는 매케인의 물음에 싱가포르, 호주, 필리핀, 말레이시아에 대한 미군 순환배치를 통해 이 지역에서 더 많은 군 기지 접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리퍼트가 주한 미대사의 권한을 넘어서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한 것은 그가 국방부 아·태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으로 동북아 군사전략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어 매케인은 “(평택) 캠프 험프리로의 이전은 잘 되고 있느냐”고 물었다. 리퍼트는 미군 주택비용 등 돈 문제가 최대 도전이라고 했다. 매케인은 “분명 기지 이전은 해야 하는 일이고, 또 전작권 문제도 걸려 있으니 당신이 잘 처리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리퍼트는 당시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을 상대로 전작권 전환 재연기 협상도 하고 있었다.

‘캠프 험프리 이전’은 한국 내 104개 미군기지를 5대 기지 중심으로 모으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의 일부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다.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미국이 대부분 비용을 부담해야 맞지만 갈수록 한국 부담이 늘고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계획 변경이 불가피해 한국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됐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점에서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한국이 언제든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미군 무기에 최대한 의지함으로써 향후 방위비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국방부 설명도 맞을 것이다.

한민구 국방장관(오른쪽)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23일(현지시간) 미 국방부 청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시기 재연기를 위한 각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_ 연합뉴스


하지만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안보를 책임졌던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2015년 12월 전작권 전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북한의 위협이나 한국의 방위능력이란 상당 부분 주관적이고 정치적 판단에 기초함을 알 수 있다. 익명의 한 정부관계자는 “순수하게 한반도 방위만 놓고 본다면 미국은 자국 국방비를 추가하지 않아도 한국 스스로 지킬 능력이 돼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미국은 최근 몇년 새 중국의 능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주한미군의 기능을 북한에만 국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런 입장은 이번 합의에서 전작권 전환을 재론하기 위한 조건으로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구비, 안정적 한반도 안보환경 말고도 동북아 지역의 안정적 안보환경을 포함시킨 것에서 확인된다. 최근 중·일 갈등을 봤을 때 이 조건의 달성이 요원하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조너선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도널드 럼즈펠드가 2000년대 초에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했을 때에 비해 지금 동북아 안보환경은 북한 때문이 아니더라도 중국, 일본, 한국 등의 공세적 태도로 한층 더 불안정해졌다”며 “당분간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작권을 갖고 있는 것이 동북아 안정에 이로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먼저 요청하지 않았어도 미국은 전작권 유지의 수요가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내 부담하지 않아도 될 비용을 부담하게 된 셈이다. 또 주한미군의 활동 영역을 한반도에 국한하려는 한국의 바람과 한반도 밖으로 확대하려는 미국의 필요는 이라크전쟁 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한·미간 갈등 소재가 될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비용까지 짊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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